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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천리 진행된 회담... 막판 비핵화 문제로 분위기 급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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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천리 진행된 회담... 막판 비핵화 문제로 분위기 급랭

입력
2018.01.09 17: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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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 회담 마치고 돌발발언

“핵무기 철두철미 미국 겨냥

우리 동족 겨냥 아니다” 성토

남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

북 ‘우리 민족끼리 원칙에서’

공동보도문 다른 표현 온도차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9일 오전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건너 남측으로 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9일 오전 판문점 MDL(군사분계선)을 건너 남측으로 오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준비된 회담다웠다. 회담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북측 대표단과 보도 인력들 사이에서 “회담이 잘될 것 같다”는 덕담이 나왔다. 실제 진행도 빨랐다. 이른 시간에 수석대표 접촉이 이뤄졌고 오전 전체회의 때 초안이 교환된 공동보도문은 6차례 추가 접촉, 총 3시간여 만에 속전속결로 채택됐다. 하지만 남측의 비핵화 언급을 놓고 북측 대표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합의문 교환 후 이례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장면은 여전한 남북 간 온도 차를 체감케 했다.

예견된 속도였다. 9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시작된 2년여 만의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 전체회의는 개시 1시간을 조금 넘겨 끝났고, 회의 말미에는 각자 작성한 공동보도문을 서로 바꿨다. 수석대표 접촉은 전체회의 종료 뒤 25분 만인 오전 11시 30분부터였다. 남측 제안에 북측이 별 이견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횟수가 늘수록 접촉 시간은 줄었다. 접점을 찾아갔다는 얘기다. ‘민족의 경사’인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공언을 허언으로 만들 수 없는 만큼 북측이 빡빡하게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대로였다. 이날 오후 8시 42분 합의문인 공동보도문이 도출되기까지 수석대표는 전체회의 직후와 종결회의 직전 두 번만 만났다. 가장 최근인 2015년 12월 차관급 당국 회담 당시 이틀에 걸쳐 5차례나 수석대표끼리 접촉하고도 협상이 결렬됐던 일과 대조적이다.

회담 초반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두 수석대표가 이구동성으로 “민심은 천심”이라며 “회담 성과를 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리 위원장이 먼저 “예로부터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고 이 천심을 받들려 북남 고위급 회담이 마련됐다”고 했다. 그러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우리 남측도 지난해 민심이 얼마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직접 체험했고 우리 민심은 남북 관계가 화해와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잘 알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고 그 민심에 응하는 방향으로 진지하고 성실히 회담에 임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속담과 격언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했다. 조 장관이 ‘시작이 반’과 ‘첫 숟갈에 배부르랴’ 같은 속담을 언급하자 리 위원장은 ‘혼자 가는 것보다 둘이 가는 길이 더 오래간다고 했다’나 ‘마음 가는 곳에 몸도 가기 마련’이라는 격언으로 답했다.

이날 회담은 눈 온 뒤 차가워진 날씨 속에 시작됐다. 자연스레 날씨가 화두가 됐다. 리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어찌 보면 자연계 날씨보다 북남 관계가 더 동결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핵심 회담 의제인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보다 남북 관계 복원 쪽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조 장관은 “이번 겨울이 춥고 눈도 많이 내려 겨울올림픽을 치르는 데 좋은 조건이 됐다. 북측에서 대표단과 귀한 손님들이 오시기 때문에 평창 올림픽ㆍ패럴림픽이 평화 축제로 잘 치러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평창 쪽에 방점을 찍었다.

점심 식사는 따로 했다. 북측 대표단은 오전 회의가 끝나고 오후 1시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 지역 통일각으로 가 점심을 먹었다. 점심 이후 북측 대표단은 다시 남쪽으로 넘어왔고 오후 내내 수석대표를 제외한 대표들이 회의와 정회를 번갈아 하면서 공동보도문을 조율했다. 큰 틀에 양측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던 만큼 회담장 안팎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남북 대표단이 공동보도문 문구에 합의해 내용을 발표하고 보도문 교환까지 마친 뒤 사달이 났다. 북측 리 위원장이 마무리 발언에서 남측 언론의 비핵화 보도를 비판하면서다. 그는 “오늘 회담은 참 좋은 회담”이라고 말한 뒤 “그런데 회담장과는 달리 남측 언론에서 지금 북남 고위급 회담에서 그 무슨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측 대표단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 위원장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핵 문제가 나와서 말이지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탄도 로켓트를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 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도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남측이 오전 회의 기조 발언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내용을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브리핑하고, 이를 언론들이 보도하자 북측에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한편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도 각자 표현을 달리한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남측은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반면 북측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 표현 대신 ‘우리민족끼리 원칙에서’라고 써 차이를 보였다. 기존 남북회담에서도 남북은 큰 문제가 없는 표현의 경우 각자 방식대로 합의문에 표기해 발표한 관례가 있다.

판문점=공동취재단ㆍ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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