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최은지(27)씨는 지난 연말 모임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선물을 풀어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곱게 싸인 포장을 열어보니 양말 가판대에서나 볼 수 있는 마네킹 발 모형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선물로는 쓸모 없고, 생뚱맞은 물건이었지만 ’쓸모없는 선물교환’이 이날 모임의 주제였기 때문에 최씨는 유쾌하기만 했다. 그는 “서로 송년 선물을 생각하다가 요즘 유행인 ‘쓸모없는 선물교환’을 해보기로 했다”며 “유아용 퍼즐, 초등학생 악기 세트 등이 선물로 등장했고, ‘쓸모 있는 선물’을 준비한 사람에겐 벌칙으로 설거지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쓸모없는 선물교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는 주차금지 표시판, 구멍난 고무장갑 등 자신이 받은 ‘쓸모없는 선물’ 사진이 2,000여건 넘게 올려졌다. 지난 1일 유튜브엔 ‘남자 셋이 쓸모 없는 선물 교환하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4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영상에는 고급 신발 브랜드 상자 안에 짚신을 넣어 선물하거나, 건강을 챙기라며 점토로 만든 과일을 주는 모습이 담겼다.
‘쓸모없는 선물 교환하기’는 몇 년 전부터 일부 모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지난 연말 연시 누리꾼들이 SNS에 적극적으로 사진을 공유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쓸모없는 선물로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 글만 400여 건이 넘게 게시됐고, 누리꾼들은 인공잔디, 목탁 등 기발하면서도 희귀한 쓸모 없는 물건들을 추천했다. 이들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구매처도 공유되고 있다.
이런 선물 교환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유행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비싼 선물을 주기엔 서로 부담스럽고, 저렴하면서도 쓸모 있는 실속형 선물은 좀체 찾기 어려운 점 때문에 시작된 유행이라는 것이다.
회사원 윤모(27)씨는 “직장 동료들과 송년회 대신 ‘쓸모없는 선물주기’를 했다”며 “1만원 대 선물로 마땅한 걸 찾을 수 없었는데, 고급 주얼리 상자에 유아용 공주 왕관 세트를 넣어주는 등 기발한 선물들이 오가 더 특별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의 취업준비생 김모(23)씨도 “저렴한 가격대로는 만족스러운 선물을 하기 힘들어, 쓸모없는 선물주기로 누구의 창의력이 뛰어난지 순위를 매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선물’ 중엔 특히 정치 관련 물건들이 적잖이 포함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2016년 말부터 ‘쓸모없는 선물’의 대표적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고, 지난 1일 게시된 박 전 대통령 응원봉은 SNS에서 9,000여회나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자유한국당 입당원서를 ‘쓸모없는 선물’ 사진으로 올린 한 누리꾼은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들에 무관심한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이런 유행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진수 대학내일20대연구소장은 “최근 청년세대는 맥락이 없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무민세대(無MEAN세대)’”라며 “이러한 유행은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들에게서 새로운 활용도를 찾아내는 청년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생 김모씨는 “선물을 주고 받을 때의 순간적인 교감과 SNS상에 인증사진을 공유하며 얻는 재미가 선물 자체의 쓸모보다 더 큰 만족으로 다가온다”며 “효용 보다는 즉흥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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