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폐쇄 검토” 경고에도
일부 가상화폐 오름세 지속
정부 규제 무용론까지 나와
전문가 “정부가 시장 이해 부족
과거 영국의 ‘적기조례’ 같아”
“더 이상 우리나라가 비정상적 거래를 주도하는 시장이 되도록 방치할 수 없다. (가상화폐 투기를 막기 위해) 거래소 폐쇄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하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8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상화폐 시장을 향해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최근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한 대책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투기 광풍이 가라앉긴커녕 오히려 더 뜨거워지자 재차 엄포성 경고를 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날도 이더리움 등 일부 가상화폐 가격은 3~10% 오름세를 기록했다. 더 이상 정부의 엄포가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서 ‘정부 규제 무용론’의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내 시장의 단기 과열을 막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설익은 대책을 쏟아내며 오히려 시장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이날부터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발급해 준 농협은행 등 6개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고강도 현장 점검에 들어갔다. 이들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발급해 주는 과정에서 자금세탁 위험평가 등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게 골자다. 최 위원장은 “은행이 불법 자금의 유통을 방지하는 문지기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불법 행위 등이 발견되면 거래소에 대한 은행의 계좌 발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중은행을 겨냥, “은행이 충분한 검토 없이 수익만을 쫓아 무분별하게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철저히 점검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현행법상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직접 규제할 방법이 없자 일단 은행을 압박해 가상화폐 시장을 간접 통제하겠다는 이야기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8일 거래실명제를 골자로 한 투기근절책을 내놓으며 곧 바로 신규 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나 당시 1,900만원대까지 떨어졌던 비트코인 가격은 곧바로 상승 반전한 뒤 계속 상승, 이날 2,400대에 거래됐다. 규제에도 가격은 더 오른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애초 시장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규제 일변도 접근 방식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적잖다. 지나친 과열 조짐은 진정시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고민해야 했는데도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부작용만 부각시킨 뒤 마음만 먹으면 규제가 가능한 것처럼 접근한 게 오히려 탈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창규 명지대 교수는 “비트코인 가격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어서 우리나라만 규제한다고 가격이 통제되는 게 아니다”며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어설픈 규제가 오히려 가상화폐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호현 경희대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양도세 과세 대책은 당장 시행되긴 어려워 시장 과열을 식힐 단기 대책이 될 수 없었다“며 ”이러한 방침은 오히려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이란 기대감을 높이는 호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 주요 국가들은 가상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지난해 자금결제법 개정으로 가상화폐를 법적 결제수단으로 인정한 데 이어 ‘거래소등록제’를 도입해 소비자 피해를 막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2014년부터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매매차익의 최대 20%까지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걷고 있다. 지난해 말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선 비트코인 선물 거래도 시작됐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비트코인 선물과 관련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출시를 증권거래위원회에 신청했다. 2015년 비트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독일 역시 부가가치세까지 부과하며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지 오래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모든 가상화폐의 합산 시가총액은 8,259억 달러(약 85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재 시가총액 세계 1위 상장사인 애플(8,900억 달러)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 나라가 아무리 강력한 규제를 한다고 해도 가상화폐의 글로벌 확산 흐름을 거스르긴 힘든 형국이다. 인호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가상화폐 규제는 마치 과거 영국이 증기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지만 마부들의 반대로 적기 조례(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빨간 깃발을 들고 달려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못 달리도록 한 규제)를 만든 우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하고 나머지는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금융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우리나라가 전통 금융시장의 대표격인 뉴욕이나 홍콩, 런던을 기존 방식으로 이길 수 없다면 지금처럼 새로운 자본시장(가상화폐 시장)이 생겼을 때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가상화폐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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