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족공조’ 명분 내세워
‘이산 상봉’ 파격적 조치 땐
한미 훈련 중단 등 요구할 수도
되레 ‘양날의 칼’ 될 가능성 높아
2년여 만에 열리는 남북 간 고위급 당국회담은 속도감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공언한 만큼 사실상 실무적 합의만 남은 상태다. 설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김 위원장 신년사 이후 북한이 ‘민족 공조’를 강조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핵 폐기 시사 없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바랄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럴 경우 북한의 전향적 태도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회담 테이블에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문제와 더불어 남북 관계 관련 현안,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해소와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환경 조성 방안 등이 올라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핵심 의제인 평창 참가와 관련해서는 선수단 입국 경로와 방남 인사, 개ㆍ폐회식 공동 입장 등이 주요 논의 사항인데 이를 놓고 남북이 크게 부딪칠 일은 없으리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나머지는 난제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산가족 문제나 군사적 긴장 완화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둘 다 지난해 7월 우리 정부가 북측에 각각 적십자회담, 군사당국회담을 통해 논의할 것을 제의했다가 답을 듣지 못한 현안이다.
이 중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 제안은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염두에 둔 시기는 올 설 연휴(2월 15~18일)다. 평창 올림픽 기간(2월 9~25일) 중인 데다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과도 겹치는 만큼 북한이 인도주의와 민족 공조를 명분으로 올림픽 참가와 함께 국제사회를 겨냥한 ‘평화 공세’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민족 공조로 방향을 잡은 만큼 파격적 조치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관건은 보상이다. 한미 훈련 중단, 미군 전략자산 전개 중지 등을 북한이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 역시 민족 공조가 명분이다. 북한 대외선전 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이날 “조선반도(한반도)에서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민족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하기 위한 선차적인 요구”라며 “북과 남이 마음만 먹으면 능히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긴장을 완화시켜나갈 수 있다”고 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창 올림픽 성공을 도울 테니 (자신들의 정권수립 70주년인) 올해 9ㆍ9절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게 김정은 신년사의 핵심 요구”라며 “9월까지 한미 훈련을 멈추는 게 민족 공조라고 북한이 강변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핵 관련 거론에는 모두 신중할 공산이 크다. 아예 판이 깨질 수도 있어서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가 의제로 오르느냐는 질문에 “예단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재개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맞물려 있어 우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북측도 알고 있으리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물론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남북 대화는 북미 대화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했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합의는 평창 참가와 관련해서만 도출하고 나머지는 서로 입장 확인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양측 차관들끼리 평창 올림픽과 남북 관계 관련 후속 실무회담을 하게 될 거라는 얘기다. 양측이 모두 적극적인 만큼 남북 회담 이 정례화할 가능성도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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