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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섭단체의 기득권정치

입력
2018.01.08 13:3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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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교섭단체의 의미가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탈당을 원하는 일부 반대파 비례대표 의원의 거취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출당을 용인해 줘야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고 자진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통합파와 반대파 어느 쪽이든 최소한 20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해야 교섭단체를 구성해 수많은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으니 사활이 걸린 쟁점이다.

교섭단체 제도는 국회 의사진행에 관한 사항을 정당 간에 사전에 협의하고 합의해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민주화 이전 정당정치와 의회정치가 발전하지 못한 시기에 이 제도는 원활한 국회운영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게 사실이다. 물론 군사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집권세력과 여당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동시에 거대야당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몇 가지 이유에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대폭 완화되어야 한다.

첫째, 교섭단체는 ‘분권’의 시대정신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교섭단체 제도는 거대정당의 프리미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 소선거구제와 함께 군소정당에게 많은 불이익을 안겨준다. 20명을 구성하지 못한 소수정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엉뚱한 상임위에 강제로 배정되기도 하고 국회 의사일정 협의에서 소외되고, 본회의와 상임위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정당들의 의원총회와 협의과정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된다. 정책연구위원의 인적 지원과 사무실 공간 배정에서 차별이 심하다. 이처럼 권한과 자원이 거대정당에게 집중되고 군소정당에 의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는 분권의 실패로 입법과정에서 소외된다.

둘째, 교섭단체의 프리미엄은 국고보조금의 배분에서 두드러져 양당제의 ‘기득권정치’를 고착화시킨다.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운영과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지급해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국고보조금 총액의 절반을 교섭단체에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절반은 군소정당은 물론 교섭단체에 추가로 지급한다. 즉,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에 따른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른정당의 국고보조금 배당은 작년 8월에는 약 14억 8,000만원이었지만 11월에는 절반 이하인 약 6억원으로 하락했다. 이처럼 교섭단체 중심의 국고보조금 배분은 우리 정치가 극단적 대결에 매몰된 거대양당의 기득권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교섭단체 제도는 ‘의회정치’를 ‘정당정치’에 종속시킨다.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 관련 안건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와 협의하도록 국회법에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국회의장이 정당 원내대표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교섭단체의 협상력이 국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교섭단체의 과도한 국회 주도는 우리 국회가 취약한 중요한 원인이다.

넷째, 교섭단체 제도는 ‘당내민주화’를 거스르고 있다. 원내 현역의원 중심의 교섭단체는 당원·대의원에 의한 상향식 의사결정이 아닌 정당 지도부 중심의 하향식 의사결정의 토대가 된다. 현역의원들의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의원총회의 결론이 자주 뒤집혀 공신력이 추락하고 당원에 의한 민주적 정당 운영이 아직도 요원한 것은 교섭단체 제도에 의한 원내 중심의 정당 운영이 정상적인 민주적 정당정치를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와 영국 하원에는 교섭단체 제도가 아예 없고 의회민주주의 국가 다수는 우리보다 구성요건이 낮다. 교섭단체에 의한 기득권정치를 타파하고 권력의 분산을 위해서는 우선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분 조건인 ‘지역구의원 5석 혹은 정당투표 3%’로 구성 요건을 낮추는 게 시급하다. 가까운 미래에 분권형 권력구조 및 선거구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이러한 제도들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ㆍ미래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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