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AI의 산업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일본 정부가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자동으로 답변할 수 있는 AI 시스템 개발을 시도했으나, 포기했기 때문이다.
8일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의회 답변을 AI가 준비하는 실험을 실시했지만 정답이 분명한 퀴즈나, 명확한 규칙 아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바둑과 달리 정치적 언어를 다루는 데는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관이나 관료, 중ㆍ참의원의 모호한 발언을 이해할 능력은 아직 갈길이 먼 셈이다.
이 실험은 경제산업성이 1,800만엔(약 1억6,990만원)의 비용을 들여 컨설팅회사에 위탁해 실시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AI 언어처리 서비스를 활용해 최근 5년간의 국회 회의록을 기초자료로 삼고, 의원들이 유사한 질문을 하면 과거 사례를 통계로 계산해 답변초안을 작성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AI가 작성한 답변을 2주 동안 공무원 80여명이 분석작업에 돌입했다. 분석 결과, 답변수준이 ‘별로다’거나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등 부정적 평가를 내린 공무원들의 응답이 48%가량 됐다. 종합평가는 ‘목표에 미달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AI는 ‘법인세율’이나 ‘보조금’ 같은 정책용어를 문맥에 맞게 인식하지 못했고, ‘원활’,‘노력’ 같은 일반적인 단어에 주목해 과거의 비슷한 질문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도 실패했다. 과거 장관답변의 기초자료가 ‘예스’나 ‘노’처럼 명확한 용어가 아닌데다 정책실행 여부도 애매한 대답이 많아 AI가 혼란을 겪은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관료들의 답변은 말은 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책임을 지지 않고 곤란한 상황을 넘어가는 하나의 기술로 통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화법이야말로 입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현재의 기술력으로 AI가 판독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관료사회에선 언젠가 방대한 국회답변 자료를 AI가 순식간에 해결해 일찍 퇴근하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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