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노멀크러시] 화려한 성공 뒤 큰 실패… 소박한 삶에서 열정 되찾다

입력
2018.01.06 04:40
9면
0 0

#1

외식업계 주름잡던 성신제씨

신용불량자ㆍ4번의 암수술…

지금은 컵케이크 만들며 평범한 삶

이탈리아어 공부… 피자사업 재기 준비

성신제(70)씨는 한 때 국내 외식 업계를 주름 잡던 인물이다. 1985년 피자헛 브랜드를 한국에 처음 들여와 전국에 52개 직영점을 운영하면서 명동 매장 한 곳에서만 월 매출 3억 원, 1993년 한 해 매출 560억 원을 기록했다. 이어 치킨 전문점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 자신의 이름을 딴 성신제 피자 브랜드를 만들었고 그 때마다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서울의 한 주택가 작업실에서 컵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피자헛, 성신제피자 등으로 한때 국내 외식업계를 주름잡던 성신제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 자신의 작업실에서 평범한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피자헛, 성신제피자 등으로 한때 국내 외식업계를 주름잡던 성신제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 자신의 작업실에서 평범한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큰 성공을 거뒀지만 큰 실패도 겪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미래를 위한 대비보다 눈앞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기 식으로 사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지갑에 수 백만원씩 넣고 다니던 제가 신용불량자가 됐고, 환갑까지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았는데 지난 6년 동안 4번의 암 수술을 겪으면서 몸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지금도 4개월마다 한 번씩 종합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대신 평범한 삶을 얻었죠.”

매일 오전 9시 작업실에 출근해 하루 20~30개의 컵케이크를 만들어 계약을 맺은 꽃 배달 업체에 가져다 주고 퇴근하면 오후 7시가 된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아령을 들고 운동하며 TV를 보다 잠이 든다. 한창 사업을 크게 할 때 사흘 동안 3개국 출장을 다닐 만큼 바쁘던 것과 비교하면 단조롭지만 스스로 너무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사업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외부 상황이 좋지 않아서라며 세상 탓, 남 탓만 했죠.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내야 하고 처음 설거지를 할 때면 ‘수많은 직원을 데리고 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지금은 내가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서둘렀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씨에게는 요즘도 ‘투자할 테니 사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 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어떻게 하면 빨리 사업을 키워 능력을 과시할까’라는 생각부터 했지만 이젠 아니죠. 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제안했겠나 싶은 생각을 하며 거들떠보지 않게 되죠. 제 그릇의 크기를 알게 됐고 딱 그만큼만 해 나가자고 마음먹었죠.”

“아내의 꾸지람이 화려한 성공을 내던지게 했죠”

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오직 성공만을 좇는 삶을 살다 뒤늦게나마 스스로 되돌아 기회를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의 부러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뿌듯함, 성공이 가져다 주는 짜릿함을 벗어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2

전문점 창업 연매출 60억 냈던 이상현씨

5평 골목식당 열며 가족의 소중함 되찾아

“나를 웃게 만드는 일 찾아 즐기면 행복”

강남의 잘나가던 조개구이 전문점을 직원들에게 넘기고 강북 수유동에 일본 가정식 식당을 차린 이상현씨가 ‘상미식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강남의 잘나가던 조개구이 전문점을 직원들에게 넘기고 강북 수유동에 일본 가정식 식당을 차린 이상현씨가 ‘상미식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조개구이 전문점 ‘갯벌의 진주’를 창업해 한때 강남 논현시장에만 3개 매장(총 1,000㎡ㆍ약 330평)을 운영하며 연 매출 60억원을 올리는 대박을 냈던 이상현(45)씨는 2016년 3월 매장을 일 잘하는 모범 직원들에게 승계하고 홀연히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5평(약 16㎡) 남짓한 일본 가정식 전문 ‘상미식당’을 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전 11시 가게에 나와 직원 3명과 함께 점심, 저녁 장사를 하고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2년 가까이 살고 있다. “수입은 상상 이하로 줄었죠. 고급 수입차 2대를 팔고 지금은 국산 차를 타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 딸에게도 학원비나 용돈도 예전만큼 지원해 줄 수 없다고 선언했고요. 아이들도 아르바이트하고, 가족 모두 경제적으로 긴장감 속에 살고 있어요. 좋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불편하지만 이 순간을 즐기자고 했습니다.”

이씨가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보통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오빠가 회장님이야”라는 아내 최상미(44)씨의 꾸짖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그들과 호흡 맞추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제가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계로 직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시만 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도 그렇게 대하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다 내려놓자고 마음먹었죠.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가 직원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마음 편하고 행복합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목표는 더 뚜렷해졌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고 해서 삶에 대한 열정조차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오마샤리프’ ‘크리스찬타일론’ ‘기온’ 등 중저가 피혁제품을 전국 300개 넘는 대형마트에 입점시켜 180억원 가까운 연 매출을 기록했던 강태식(50)씨는 요즘 새 사업체를 꾸리느라 눈코 뜰 새 없다. 회사를 한참 키워가던 그는 2010년 장애인, 탈북인, 한부모 가정 직원들을 고용했던 사회적 기업 ‘고마운손’을 맡았다가 4년 만에 ‘쪽박’을 찼다. 대학 졸업 후인 1994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딱 20년 만에 망한 것이다.

#3

피혁제품으로 잘나갔던 강태식씨

사회적 기업 맡았다가 크게 실패

“몸집 키우기보단 알찬 회사 만들고파”

강태식씨가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회적 기업 고마운손의 실패담을 전해주고 있다. 고양=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okilbo.com
강태식씨가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회적 기업 고마운손의 실패담을 전해주고 있다. 고양=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okilbo.com

“사회적 기업 관계자들은 회사가 잘 안 되면 외부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품질이나 마케팅, 영업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지 않더군요. 제가 회사를 맡았을 때부터 지인들은 그걸 왜 맡느냐고 말렸지만 스스로 사회적 기업 살려서 좋은 일 해보자는 생각에 덤볐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강씨는 고마운손에서 손을 떼고 2015년부터 프리미엄 피혁 전문 브랜드 ‘연우’를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예전에는 매장 수 늘리는 데 열중했다면 지금은 온라인 면세점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왜 더 투자해서 몸집을 키우지 않느냐 하지만 부가가치 높이며 탄탄하고 알찬 회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강씨의 진짜 목표는 ‘제대로 된 사회적 기업’ 만들기다. “5년 가까이 사회적 기업 일을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히 알게 됐으니 시작부터 그걸 바꿔야죠. 사회적 기업에서 만든 제품은 품질, 디자인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소비자들의 편견을 깨고 싶습니다. 그걸 위해 하나하나 공부하고 있고요.”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해서 안 된다

성신제씨의 작업실 책상에 놓여있는 한-이탈리아 사전.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성신제씨의 작업실 책상에 놓여있는 한-이탈리아 사전.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성신제씨의 작업실 책상에는 낡은 ‘한-이탈리아 사전’이 놓여 있다. 벌써 수년 째 이탈리아어를 혼자 공부하고 있다. 그는 “피자로 또 승부를 볼 생각이고 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맛뿐만 아니라 피자의 원산지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탈리아어 공부는 이를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해요. 당장 가진 건 적지만 피자 사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목표가 있고 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 친구는 은퇴하고 나서 삶에 대한 목표가 없으니까요.”

성신제씨가 컵 케이크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성신제씨가 컵 케이크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한 수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20, 30대들에게도 ‘나이, 학벌 개의치 말고 당장 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범하게 사는 것과 대충 사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의 스펙이 너무 낮아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도전하기를 망설입니다. 꿈꾸기 조차 포기한 채 ‘그냥 되는대로 살지 뭐’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도전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강태식씨는 사회적 기업 고마운손의 실패를 통해 무조건 덩치를 키우기 보다 알찬 회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강태식씨는 사회적 기업 고마운손의 실패를 통해 무조건 덩치를 키우기 보다 알찬 회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강태식씨 역시 젊은이들에게 “과감하게 일을 저질러 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혹시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너무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나중에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장단점도 알게 되고 그것은 큰 자산이 됩니다.”

이상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상미식당에서 강남을 떠나 강북에 식당을 차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이상현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상미식당에서 강남을 떠나 강북에 식당을 차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이상현 대표는 “나 자신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성공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남들이 볼 때는 평범해 보일지라도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죠.”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