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민경제에 중대 영향
공무원 버금가는 청렴 요구”
이진성 소장 등 4명 반대의견
“다른 직무 비해 형량 과도”
1억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최대 무기징역에 이르는 가중처벌 조항을 둔 법률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금융기관 직원 김모씨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특정경제범죄법 제5조 제4항 제1호는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받은 금품 등 이익이 1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김씨는 대출을 해주고 사례금으로 1억5,000만원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지난해 7월 2심에서 감경 사유가 인정돼 징역 5년에 벌금 1억5,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이 법률이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도록 한 것은 차별이라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거부 당하자 헌재에 직접 헌법소원을 냈다. 신용카드회사나 캐피탈회사, 미소금융재단, 전자금융회사, 금융지주회사 등은 이 가중처벌 조항을 적용 받지 않는데 금융회사 임직원만 무겁게 처벌한다는 주장이다.
헌재는 이에 대해 “금융기관이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금융기관 임직원 직무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라며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공무원에 버금가는 청렴성이 요구돼 다른 직역 종사자에 비해 중하게 처벌하더라도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013년 7월에도 같은 사안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했지만 합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어, 이번에도 당시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헌재는 “공공성이 있는 기관 중 어디까지 수재행위 등을 처벌할지는 입법자가 선택할 사항”이라며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다른 기관은 예금이나 예탁금을 유치하지 않거나, 대출 요건이나 규모, 대상이 제한돼 한정된 범위에서 금융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부패행위가 끼칠 영향이 금융기관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진성 소장과 안창호ㆍ이선애ㆍ유남석 재판관은 “공공성이 강한 다른 직무 관련 수재죄의 법정형량과 비교해 지나치게 과중해 형벌체계상의 균형성을 상실했다”며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정족수(6명 이상)에 미치지 못했다. 4명의 재판관들은 “이 조항 이외에 사인(私人)의 직무관련 수재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매우 드물고 수수금액에 따라 가중처벌하는 것은 위 조항이 유일하다”며 “금융산업의 발전ㆍ확대로 금융기관 임직원 업무가 다양화돼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도 최저 법정형을 징역 10년 이상으로 정해 감경사유가 있어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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