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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이사도라 던컨 (1월 5일)

입력
2018.01.0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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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의 1월 5일은 현대무용의 창시자라 불리는 이사도라 던컨에게도 각별한 날이었다고 한다.
1905년 러시아의 1월 5일은 현대무용의 창시자라 불리는 이사도라 던컨에게도 각별한 날이었다고 한다.

전통의 권위는 흔히 변방에서 금이 가지만, 변방의 열등감이 거꾸로 전통의 갑옷으로 변질되는 예도 있다. 변방에도 전통의 세례를 입은 소수는 있고, 그들 소수의 특권적 지위는 중심에서보다 더 위세를 떨치며 완고하고 끈질기게 구심력을 발휘한다. 고국인 미국에서 홀대 당하던 19세기 말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의 자유분방한 춤이 유럽에서 먼저 인정받은 것도, 문화 중심의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고전 발레로 대표되는 유럽 문화에 대한 미국의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문화적 보수주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던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산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해서 발레는커녕 무용이라곤 배워본 적이 없는 독학자였다. 이혼한 어머니가 손으로 짠 모자 편물을 팔러 다녀야 했고, 학교마저 성미에 맞지 않아 10세 때 중퇴했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혼자 춤을 추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춤에 사로잡힌 그는, 밤마다 어머니가 읽어주던 시와 박물관에서 본 그림, 거리 풍경과 구름, 들판의 꽃들에게서 동작을 익히며 더불어 춤추곤 했다고 한다.

던커니즘(Duncanism)이라 불리는 그의 철학, 즉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라는 그의 신념 안에서, 교본에 몸매와 동작을 맞춰야 하는 발레는 춤을 빙자한 전통의 억압이었을 것이다. 유럽은 그의 새로운 ‘자유 댄스’에 열광했고, 그를 통해 클래식 무대의 전문가들이 전유하던 춤은 비로소, 역설적으로 고대 전통 축제의 그것처럼 거리의 대중에게 나누어지게 됐다.

현대 무용은 그렇게 던컨의 자유로운 영혼 위에서 탄생했다. 그의 춤에 특히 감응한 곳이 발레의 불모지였던 독일이었다는 점도 이채로우면서도 한편 수긍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운명의 1905년 1월 5일(그레고리력 기준), 러시아에서 본 노동자 장례 행렬을 언급했다. 빵과 자유를 위해 겨울궁전 앞에 섰다가 학살 당한(피의 일요일) 가난한 노동자들의 장례식. 그는 “내가 이 광경을 보지 않았더라면 내 전 생애는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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