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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에 휩싸인 백악관… 배넌 “이방카 돌처럼 멍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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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과 분노’에 휩싸인 백악관… 배넌 “이방카 돌처럼 멍청”

입력
2018.01.04 17:0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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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내부 다룬 책 발췌본 공개

트럼프, 적으로 돌아선 측근에 격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백악관에서 스티브 배넌 당시 수석 전략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백악관에서 스티브 배넌 당시 수석 전략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백악관의 속살을 파헤친 한 권의 책이 미국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때 동지 관계로까지 불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이 책을 계기로 사실상 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안 우파(alt-right) 운동’의 기수 격인 배넌을 온갖 모욕적 표현으로 맹비난했다. 두 사람의 결별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및 국정 운영 방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책은 칼럼리스트인 마이클 울프가 트럼프 주변 인사 200여명을 인터뷰한 뒤 트럼프 백악관의 지난 1년을 저술한 ‘화염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 조만간 출간 예정인 이 책의 발췌본이 3일(현지시간) 공개되자 워싱턴 정가는 즉각 들끓었다.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대통령직을 맡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고 보고서도 전혀 읽지 않고 하찮은 일로 주변과 싸우는, 어릿광대 내지 바보로 묘사하는 등 여러 민감한 내용들이 담겼다. 특히 배넌이 인터뷰에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표적으로 삼는 2016년 6월의 ‘트럼프 타워 회동’을 “반역”, “비애국”으로 표현한 것이 즉각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사위 재러드 쿠슈너, 폴 매너포트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이 러시아 정보원과 만난 것을 두고 배넌은 “그 캠프 핵심 인사 3명은 변호사도 대동하지 않은 채 해외 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그게 반역이나 비애국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더라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연방수사국(FBI)을 즉각 불렀어야 했다”고 말했다. 배넌은 또 특검 수사가 돈 세탁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그들은 전국 방송에서 돈 주니어(트럼프 대통령 아들)를 계란처럼 박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안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를 ‘돌처럼 멍청하다’고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그는 백악관에서 해고될 때 직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잃었다”며 격분한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내가 이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을 때 캠프에 들어온 직원이었다”며 위상을 평가절하했고, “미디어와 싸우는 척하지만, 자신이 백악관에서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기 위해 미디어에 잘못된 정보를 유출했다. 그게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다”며 배넌을 자기 위상을 부풀리는 허풍쟁이로 묘사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변호사인 찰스 하더를 통해 배넌에게 ‘정지 명령(Cease and Desist)’ 문건을 보내, 배넌이 계속해서 발언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나는 배넌을 좋아한다. 나의 친구다”고 두둔했고 그가 백악관을 떠난 뒤인 10월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그는 나의 역사적 승리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백인 민족주의’로 특징되는 ‘대안 우파’ 운동의 핵심 인사인 배넌이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는 데 워싱턴 정가의 이견은 없다. 배넌의 측근은 한발 더 나가 “배넌은 자신이 그 운동의 대장이며, 트럼프는 수혜자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는 배넌의 측근들을 인용해 두 사람이 2010년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배넌이 트럼프 출마를 권유했고, 수 년간 이념적으로 그를 이끌어왔다고 전했다. 온라인매체인 브라이트바트를 창설한 배넌이 이 매체를 활용해 ‘트럼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파 운동의 주인공이자 킹 메이커를 자처한 배넌의 야망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파국을 맞게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울프는 책에서 배넌이 2020년 대통령 선거에 직접 출마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WP는 배넌이 최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주변에 말했다가 그의 재정 후원자인 억만장자 레버카 머서의 지지를 잃었다고 전했다. 머서 측 인사는 WP에 “지지층이 배넌과 트럼프 중 택해야 한다면,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측의 결별로 인해 콘크리트 지지층의 균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았을 때 결국에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 것으로 배넌은 믿고 있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반면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측근들이 극단적 우파인 배넌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도적 행보를 통해 지지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해왔던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그들(트럼프와 배넌)이 함께 경작했던 ‘포퓰리즘적 민족주의 세력’의 미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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