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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북 올림픽

입력
2018.01.04 17: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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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수교를 일궈 낸 핑퐁외교도 시작은 사소했다. 1971년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 글렌 코완이 중국 선수와 훈련하다 자국 버스를 놓친 게 발단이다. 중국 선수의 권유로 중국팀 버스에 탄 코완은 당시 세계적 선수인 좡쩌둥과 선물을 주고받았고, 이것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미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보도를 접한 마오쩌둥은 “좡쩌둥은 훌륭한 탁구선수일 뿐 아니라 매우 유능한 외교관”이라며 미국과의 탁구 교류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접고 미국팀의 중국 방문을 전격 승인했다. 당시 미국의 캄보디아 폭격에 대한 반발로 중국 탁구팀의 대회 참석 자체가 불투명했던 것을 감안하면 역사적 우연이라 할 만하다.

▦ 국경 문제로 3차례나 전쟁했던 인도ㆍ파키스탄이 1980년대 데탕트를 이룬 데는 크리켓 경기가 한몫했다. 분쟁지인 카슈미르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친선 크리켓 경기로 교류의 물꼬를 튼 양국은 87년 크리켓 월드컵까지 공동 개최했다. 테러 문제로 으르렁대면서도 국제무대에서 맞대결이 펼쳐지면 양국 정상이 경기장에 나란히 앉아 화해 제스처를 과시하곤 한다. 흑백분리 정책에 대한 제재로 24년 동안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던 남아공이 국제스포츠계에 복귀한 것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흑백 혼성팀을 구성하면서다.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남북 접촉이 급물살을 타면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이 밝아졌다. 개∙폐회식 공동입장을 넘어 피겨스케이팅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얘기까지 오간다. 경기력과 선수 사기에 부정적이지 않다면 신뢰 구축 측면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 1991년 탁구와 축구에서 극적 승부를 연출한 단일팀 드라마를 재연할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동ㆍ서독도 냉전이 한창이던 1950, 60년대 수백 차례의 체육회담을 거쳐 올림픽에 여러 차례 단일팀으로 출전하면서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 북한이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에서 은ㆍ동메달 한 개씩 두 개가 전부다. 동계올림픽 참가 자체가 들쭉날쭉했다. 평창올림픽 출전 선수 숫자도 우리는 역대 최대인 150명에 이르지만 북한은 10명 남짓 될 거라 한다. 경제력에 비례하는 스포츠 국력의 단면일 텐데, 단일팀을 구성한다면 당국이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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