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하면 北 도발 감행
이후 갑작스러운 대화 공세 전환
역대 정권마다 남북 관계는 집권 초반 탐색전을 펼치다 갑작스레 해빙 국면으로 전환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은 어김 없이 각종 군사 도발을 감행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새 정부의 대북 기조를 떠보는 한편 기선 제압에 나서려는 의도였다. 그러다 돌연 대화ㆍ평화 공세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남북관계는 냉ㆍ온탕을 오갔다.
문재인정부도 취임 직후 거듭된 유화 손짓을 보냈으나 북한이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으로 응수하며 경색 국면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대화 제의에 우리 정부가 하루 만에 화답하면서 남북관계 돌파구가 마련되는 모습이다.
박근혜정부 때는 2012년 정부 출범 13일 전 전격 강행한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취임 직후엔 북한이 개성공단 인력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면서 공단 가동이 그 해 9월까지 160일간 중단되는 사태도 겪었다. 북한의 전형적인 남한 길들이기 전략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역시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였다. 김 위원장은 “북남 사이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상호 비방 및 적대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중대 제안’을 두고 곧바로 남북고위급 접촉이 열렸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 해 2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렸고, 가을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하면서 기대는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고위급 접촉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남북관계는 또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이명박정부 때는 2008년 취임 첫 해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듬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북한 조문사절단의 방남으로 유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 했으나, 같은 해 11월 대청해전이 발발하며 무위로 돌아갔다.
북한의 ‘떠보기’ 행태는 진보정권 때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집권 첫 해 강릉 앞바다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과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이 한껏 고조됐다. 남북관계 물꼬가 트인 것은 그 해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다. 이후 1차 연평해전 등이 발생했지만, 햇볕정책을 밀어붙인 끝에 집권 3년 차인 2000년 6ㆍ15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노무현정부도 취임 직후 불거진 대북송금 특검 문제로 냉기류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2005년 6ㆍ15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면서 급속도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후 6자회담을 통해 9ㆍ19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핵 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됐고, 집권 말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뤄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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