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드러내지 않는 성향 불구
“하메네이 죽어라” 격렬한 표현
청년들 분노의 거대함 보여 줘
이란에는 ‘터로프’라는 문화가 있다. 공공 영역에서 만난 사람을 상대로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직설적 표현 대신 모호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외부에 나설 때는 복장도 철저히 관리하고 상대방이 무례하게 굴어도 참는 이란 예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터로프’에 비춰보면 지난해 말 이후의 반정부 시위는 이란 사회에 큰 충격이다. 거꾸로 “로하니, 하메네이는 죽어라”같은 격렬한 외침에 얼마나 큰 민중의 분노가 담겼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 불평등과 사회적 억압을 참고 점진적 개혁의 결실을 맺길 기다리던 이란 국민들이 마침내 분노를 터트렸다고 분석한다.
외신은 이번 시위가 과거 개혁파를 지지한 반정부 집회와 달리 명확한 지도부도, 통일된 구호도 없다는 점에 주목하며 ‘새로운 정치주체의 등장’이라고 평가했다. 전미이란계미국인위원회(NIAC)의 트리타 파르시 회장은 미국 CNN방송에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반체제 구호는 하산 로하니 정부가 약속한 ‘단계적 변화’마저 믿지 않는, 정치에 실망해 투표조차 하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기존 전문가들은 개혁파인 로하니 대통령이 지난해 지지율 57%로 대선에서 압승한 데다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중동 패권 경쟁에서도 기세를 올리던 터라 개혁파 정권에 대한 이란국민들의 지지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크게 빗나간 것이다.
시위를 촉발한 요인도 다양하게 지목됐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제 불평등을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로하니 대통령 집권 이후 이란의 경제지표가 호전됐지만 이익 대부분이 집권 세력으로 흘러 들어갔고, 청년층 실업률이 25%에 머무는 가운데 물가만 상승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별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 카림 사드자드푸르는 디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이란은 정치ㆍ경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독재국가”라며 “여성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옷차림과 생활양식마저 억압하는 신정체제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도 이번 시위를 추동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재 국면이 극적인 정치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혁명수비대 등 군사력의 대부분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헌법수호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신정체제의 지도 하에 있어, 언제든지 폭력 진압으로 반발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왕조시대 때부터 수시로 정권을 뒤집었던 이란인들의 저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1906년 입헌 혁명으로 카자르왕조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이란은 1968년 팔레비 왕가 독재에 반발해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고, 신정정치와 군부의 억압 속에서도 1999년 7월 대학생 시위, 2009년 보수파 대통령 당선에 반발한 ‘녹색 운동’등 전국 규모의 시위가 발생한 바 있다.
이날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한 집회와 무력충돌로 인해 시위대 9명이 추가로 숨지고 3일간 450여명이 체포됐다. 현재까지 집계된 총 사망자 수는 22명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전날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는 인정하나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오히려 폭력 사태가 확산된 것이다.
한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2일 소요 시작 후 첫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 며칠간 이란의 적들이 뭉쳐 돈과 무기, 정치ㆍ정보 기관 같은 모든 수단을 이용해 이란에서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며 미국 등 외부 세력에 의해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듯한 입장을 표명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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