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가장 큰 화두는 개헌이다. 개헌은 지난 1987년 이래 꼭 31년 만이다. 헌법을 바꾸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권력구조 개편이므로 바야흐로 대한민국 제7공화국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헌법을 바꾸고 새로운 공화국을 연다는 것은 법조문 몇 개를 어떻게 바꾸고 정치지도자를 어떻게 선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개헌은 시대를 담는 과정이다.
현행 6공화국 헌법은 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태어났다. 전두환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새로운 민주화 시대를 열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헌법조문으로 담겼다. 7공화국 헌법의 모태는 누가 뭐래도 2016-17년의 촛불혁명이다. 촛불혁명의 직접적 원인은 물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지만 그 속에는 지난 30년 동안 쌓인 한국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깔려 있었다. 촛불혁명이 87년 6월 항쟁의 시즌2였다는 평가는 우연이 아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박정희 신화의 붕괴이기도 하다.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남아 있다. 그 헌장의 중간쯤에 나오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는 말하자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했다. 게다가 둘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었다.
좁고 막힌 땅덩어리에서 강력한 중앙집권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국가란 곧 확장된 가정이고 최고지도자는 가장과도 같다는 가부장적 일체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북한 사회주의가 수령-당-인민이 삼위일체라는 김일성식 주체사상을 쉽게 받아들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북한의 어버이가 김일성이었다면 남한의 어버이는 박정희였고, 그의 불쌍한 딸이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는 시나리오는 박정희식 시대정신 속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가부장적 가치전도는 이후 한국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국가보위를 위해서는 국민의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잠시 유보해야 한다. 세월호 가족이 국가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되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가를 위해 그저 입을 닫고 여생을 조용히 보내야만 한다. 국가가 잘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에게 사회의 많은 자산과 혜택을 몰아줘야 하고 국민들은 그 고통을 잠시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라가 잘 돼야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집안이 잘 되려면 될성부른 장남에게 가정의 모든 자원을 몰아줘야 한다는 예전의 논리와 대단히 비슷하다.
촛불혁명 기간 동안 전국을 울렸던 “이게 나랴냐?”는 외침은 이제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자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는 헌법조항 몇 개를 고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관계 재정립은 관습과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이전의 관계가 더 이득이었던 사람들도 당연히 반발하겠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큰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전 국민적인 토론의 장이어야 하고 그 결과가 충실하게 법조문에 반영돼야 한다.
근대과학이 태동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제7공화국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국민과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 설정하는가로부터 결정될 것이다.
이 둘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할지 나도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지난 촛불혁명 시기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면 의미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촛불혁명에서는 뚜렷한 저항의 중심이 없었고 자발적 일반 시민들의 느슨하면서도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큰 힘을 발휘했다.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국가란 국민들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의 연결체가 아닐까? 수직적인 위계관계에서 수평적인 네트워크로의 전환이야말로 7공화국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다.
이는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과도 연결된다. 요즘 인기 있는 블록체인 기술은 한 마디로 네트워크 분산형 거래장부 체계이다. 중앙집중식 서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하다. 정보유통, 의사결정, 권력행사의 과정에서 수평 네트워크를 통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없다면 우리가 온전히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있을까? 산업혁명은 혁신기술 몇 개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의 구조가 바뀌는 혁명이다. 혁신기술조차도 사회적 필요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을 가장 확실하게 대비하는 길은 그 이면에 숨겨진 철학과 정신을 7공화국의 헌법에서부터 구현하는 것이다. 그 정신은 촛불혁명에서 드러난 시대정신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의 통합! 무술년 새해의 여명에서 대한민국 제7공화국의 새로운 희망을 기대해 본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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