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는 여야 정당의 대립과 적대의 일상화다. 이는 정당 이기주의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갈등 치유나 시민사회 균열 해소라는 정당 본연의 기능 상실과도 직결된다. 대결의 정치가 협치의 정치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협치의 정치를 위해서는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긴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선거제도나 정당체제는 합의제와 친화적이지 않다. 우선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의 문제다. 다수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지역에 따라 일당패권체제를 가능케 하는 현재의 정당구도는 상당 부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기인한다.
정당학자 듀베르제에 의하면 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가 결합하면 양당제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이른바 듀베르제의 법칙이다. 내각제에서는 다당제를 전제로 한 연정과 협치 없이는 내각 구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당의 연대를 내용으로 하는 연합정치가 정국구성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양당제가 대립의 정치를 결과한다면 다당제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듀베르제의 법칙이 아니더라도 다당제를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고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의사결정이 정당간의 협치를 기본으로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 방식을 따른다면 정당간 구조적 대립은 상당 부분 지양될 것이다. 결국 교섭단체 이상의 규모를 갖는 중도지향 정당의 존재는 연정과 협치를 통한 다당제체제의 정착을 위해 긴요하다.
국민주권 및 헌법정신을 훼손한 세력과 행위 등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한국사회의 구조적 적폐가 온존할 수 없도록 사회의 얼개를 바꿔 나가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립ㆍ적대적 정치구도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당재정열이나 정당체제 변화는 절실하다. 연합정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0대 총선 민의는 다당제를 통한 정당 대립구도의 해소였다. 이러한 유권자의 요구가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든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념적으로 중도진보 성향의 정당이 규모 면에서도 교섭단체를 훌쩍 넘는 위상을 확보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다당제를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 실현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게 20대 총선의 정치적 의미였다.
그러나 작금에 논의되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한국정당체제를 의미 있는 다당제로 바꾸고 정당의 상시적 적대 관계를 절충과 타협의 정치문화로 바꿀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두 정당의 통합이 정치적 퇴행을 가져올 개연성조차 엿보인다.
우선 이념적 스펙트럼의 문제다. 중도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바른정당은 명시적으로 보수지향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안철수 대표의 우클릭 행보와 맞물린다면 중도개혁보다는 보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국민의당 내부의 분열이 자명한 상황에서 통합의 정치가 아닌 분열의 정치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런 정당이 적대적 공존의 지양이라는 대의에 부합하지 않음은 명백하다. 승자독식의 정치환경을 바꾸고 다당제를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정치발전 보다 총선 민의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궁극적으로 한국당과의 연대와 공조를 거쳐 범보수연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정당구도 변화는 총선 민의는 물론 촛불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정치는 구태의연한 정치문법에 안주해 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정치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한 사회구조 개혁은 불가능하다. 정부형태 변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정치제도 변화를 통해 협치가 가능한 정당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이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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