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연기는 익숙한데 ‘주진모’라는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974년생 동명이인 배우도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으리라. 요즘 1958년생 주진모의 활약이 돋보여 헷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영화 ‘타짜’의 도박사 짝귀라고 설명하면 단박에 알아채는 그 배우, 주진모. 그는 새해에 연기 인생 35주년을 맞는다. 중견배우가 설 자리가 많지 않은 충무로와 안방극장에서 그는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를 촬영하고 있는 그는 “내 나이가 어느새 예순이 된 줄도 몰랐다”며 껄껄 웃었다.
주진모가 연기를 시작한 건 고려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1970년대만 해도 못 먹고 굶주리던 시절이었어요. 아버지가 우리나라 식량난 해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라고 권하셔서 농과대학에 진학했어요. 대학생이 됐으니 한번 놀아보자는 생각에 찾아간 곳이 극회였죠. ‘감자 박사’가 되려고 했던 제 인생이 그곳에서 바뀌었습니다.”
1983년 연극 ‘건축사와 아싸리황제’로 무대에 정식 데뷔해 국립극단 단원(1987~1995년)으로 활동했다. 입단 당시 최연소 단원으로 주목 받았다. 충무로도 그를 탐냈다. 1996년 ‘학생부군신위’로 영화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작품 40여편에 출연했다. ‘타짜’의 짝귀를 비롯해 ‘도둑들’의 형사반장, ‘신세계’의 경찰간부까지,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이 강렬한 캐릭터를 빚어냈다. ‘부활’ ‘마왕’ ‘신의 선물-14일’ ‘옥중화’ 등 드라마 20편에도 얼굴을 비쳤다. 2017년에도 무척 바빴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안관’ ‘브이아이피’와 드라마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에 출연했다.
‘연기 달인’이란 수식이 어울리는 관록에도 그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금도 제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아요. 끊임없이 자기 의심을 하면서 새로움을 찾아가는 게 배우의 숙명이란 생각도 듭니다.” 배우로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다. 그는 “마치 신기루를 쫓는 듯한 막막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간혹 그 신기루를 잡는 경험을 하게 되면 생의 감각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주진모는 “이제야 연기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했다. 젊은 시절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캐릭터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의 뿌리인 연극 무대에 제대로 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영원한 현역이기를 꿈꾼다. “오랜 세월 숱한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다 보니 어느 순간 희로애락에 초연해지더군요. 나이가 쌓인 만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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