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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민원’에 짓눌린 콜센터 직원ㆍ구청 공무원

입력
2018.01.01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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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민원 전화 응대하다 실신도

우울증ㆍ자살충동 타 직종의 4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스회사 콜센터 센터장 A씨는 최근 수 시간에 걸친 민원 전화를 응대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실신했다. 30대 남성이 5일간 하루 평균 5시간, 총 217차례 콜센터에 ‘분노 민원’을 쏟아낸 탓이다. 심한 욕설과 폭언에 숨을 몰아 쉬며 “죄송하다”만 반복하던 센터장이 짧은 비명과 함께 쓰러진 직후 119를 찾는 주변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갔는데도, 민원인은 “이것들이 연기하고 있네”라고 화를 냈다. A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8주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해당 남성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자신의 분노를 민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터뜨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민원인들의 막무가내 요구와 폭언에도 웃으며 응대해야 하는 이들은 속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의 경우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느끼는 비율이 다른 직종에 비해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한 악성 민원인들을 맞닥뜨리는 최전선에는 콜센터 직원들이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말과 욕설은 기본, 협박까지 일삼는 민원인들에 콜센터 직원들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 콜센터 상담사로 5년간 일한 박모(40)씨는 “심한 경우엔 개인 전화번호를 받아가서 수백 번씩 전화를 걸기도 한다”면서 “본사에 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참고 견디는 편”이라고 털어놨다.

민원 창구에서 근무하는 공공기관 직원이나 공무원 등은 분노 민원인들에게 전화는 물론 대면으로도 시달린다. 한 공기업 상담 창구에서 1년간 근무했던 고모(26)씨는 “자신이 이 돈을 왜 내야 하냐며 일주일 내내 찾아와 욕설을 하고 위협한 사례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서울 시내 한 구청 공무원은 “민원에 강하게 대응하다간 감사원이나 국민신문고에 수도 없이 고발하는 통에 업무량이 몇 배로 늘어나 일단 참는다”고 했다. 분노에 찌든 민원인을 버거워하는 건 경찰도 마찬가지. 경찰 관계자는 “자신의 민원을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경찰관들을 무더기로 고소하는 경우가 가장 곤란하다”고 말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권익위원회에서 분노 악성 민원인에 대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악성 민원으로 판단될 경우 즉시 상담을 중단하도록 하는 등 더욱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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