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 무대미술계의 ‘대모’ 이병복씨가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7년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기념공연인 ‘윈더미아 부인의 부채’ 출연을 시작으로 무대 인생에 첫 발을 디뎠다. 이듬해엔 오화섭ㆍ박노경 부부와 함께 여인소극장의 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1953년 한국전쟁 도중 부산에서 한국 추상회화 1세대 화가인 권옥연 화백(1923~2011)을 만나 결혼했다.
권 화백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로 유학을 떠나 조각과 의상을 전공했다. 귀국 후 1966년 연출가 김정옥 선생과 극단 ‘자유’를 창단해 2006년까지 40여 년 세월을 이끌었다. 배우 박정자, 김용림, 김혜자, 최불암, 고(故) 윤소정 등이 자유 창단멤버다. 자유 대표를 맡아 연극 수백여 편의 제작과 의상, 무대설치, 효과 등 무대미술 전반을 책임졌다. 한지 등 옷감이 아닌 다양한 재료로 만든 창의적 무대의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대미술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국 연극계에 무대미술을 도입해 ‘1세대 무대미술가’로 자리잡았다. 1969년에는 자유의 전용 극장이자 한국 소극장 운동의 효시가 된 ‘카페 떼아뜨르’를 서울 명동에서 개관해 1975년 까지 운영했다.
그는 한불문화협회장, 한국무대미술가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화관문화훈장, 백상예술대상 무대미술상, 동아연극상, 동랑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1991년 무대미술가 경연대회인 프라하 콰드리날레에서는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따라지의 향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아가씨 길들이기’ ‘도적들의 무도회’ ‘무엇이 될고하니’ ‘피의 결혼’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등이 있다.
유족은 아들 권유진(첼리스트) 이나(재불화가)씨 등 1남1녀. 빈소는 고대안암병원, 발인은 내년 1월 1일 오전 7시이다. (02)927-4404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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