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뒤, 어머니는 끼니를 이으려고 나를 업고 이웃에 밥을 빌리러 다니셨다. 살던 동네도 아니었으니, 주변엔 모두 낯선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끼 두 끼 때우고, 하루 이틀 버티면서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장세철 고려건설 회장)
지역 명사들의 사모곡을 모아서 묶은 ‘민들레꽃 우리 어머니’가 출산됐다. 책에는 (주)우방 이후 지역 최고의 건설 명가로 자리매김한 고려건설의 장세철 회장을 비롯해 윤영애 전 대구남구청 주민생활국장과 석민경 생장 대표, 오정섭 대구보건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박병욱 달인의찜닭체인본부 회장, 김선희 경정(대구성서경찰서 형사과장), ‘안동역에서’를 부른 가수 진성, 국악인 박애리, 방송인 한기웅, ‘지진 아니운서’로 유명한 김명미 TBC앵커, 슈퍼모델 추아림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사연 하나 하나가 ‘인간극장’이다. 유난히 힘든 유년기를 보낸 장 회장을 시작으로, 윤 전 국장은 외조모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이후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공무원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았고, 지역에서 ‘어르신들의 유재석’으로 통하는 방송인 한 씨는 고등학교 시절 병원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업고 집으로 돌아온 일화를 고백했다. 가수 진성은 공전의 히트곡을 기록한 ‘안동역에서’을 만나기까지의 과정, 결코 우연 같지 않은 기이한 인연을 소상하게 밝혀놓았다.
대구성서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 중인 김선희 경정의 이야기는 특히 눈길을 끈다. 지역 조직폭력배 4개 파를 해체, 활동상이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가장 아쉬웠던 사건으로 13년 전 노래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꼽았다. 피해자는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범인을 꼭 잡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인터뷰 말미에 살해당한 피해자의 아들이 경찰이 입문해 형사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그 아들이 꼭 범인을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이 제본소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즈음, 그 아들이 13년 만에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민규 기자가 이 사실을 세상에 가장 먼저 알렸다. 책에는 노래방 사건뿐 아니라 폭력배 검거 과정에서 겪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출간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윤창식기자 csy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