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부모를 찾으려 고국으로 돌아온 40대 노르웨이 입양인이 고시원에서 숨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입양간 국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국을 찾았지만 말조차 통하지 않아 노르웨이보다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결국 친부모의 소식은커녕 외로움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21일 오전 10시 50분께 경남 김해의 한 고시텔에서 관리인이 노르웨이 국적 얀 소르코크(45ㆍ한국명 채성우)씨가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것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고시텔 측에 따르면 얀 씨는 평소 혼자 지냈고 술을 자주 마셨는데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잠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숨진 채 이미 부패상태에 있었다는 것. 시신 주변에는 맥주병과 소주병 등 빈 술병이 늘려 있었다.
신고를 접수한 김해중부경찰서는 얀 씨가 이미 10여 일 전에 숨진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인규명 부검을 의뢰한 결과 간경화와 당뇨 합병증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했다. 8세 때인 1980년 국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로 입양된 얀 씨는 노르웨이 양부모 아래서 학창시절과 청년기를 보내며 성장했으나, 제2의 고국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국과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지기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마침내 혈육을 찾기 위해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온 얀 씨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서울과 김해 등을 의욕적으로 오갔다.
얀 씨는 귀국 이후 서울의 국립중앙입양원 등 관련 기관을 상대로 친부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룸 관리인 등에 따르면 얀 씨는 부모를 찾지 못한후부터 크게 실망한 채 8㎡에 불과한 비좁은 원룸 안에서 술을 마시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다 보니 평소 만나는 내국인 지인은 없었다. 얀 씨는 당연히 한국말도 잘 못해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원룸 관리인과 인근 동네주민들은 “얀 씨의 손에는 항상 소주가 들려 있었으며 유일한 친구가 술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결과 평소 몸이 허약했던 얀 씨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세 등으로 국립중앙입양원 측으로부터 병원 치료를 권고받기도 했으나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이 없었던 얀 씨는 노르웨이에서 매달 보내주는 약간의 연금으로 생활해왔으나 사망 당시 노르웨이에 있는 양부는 사망하고 양모는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국에 와서도 꿈에 그리던 친부모를 만나지 못한 얀 씨는 결국 노르웨이 양모에 의해 주검이 거둬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관계자는 “노르웨이 대사관을 통해 얀 씨 양모를 다양한 방법으로 수소문 한 결과 다행히 연락이 닿아 조만간 장례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며 “뿌리를 찾으려고 고국에서 혼자 애를 태우다 막막해지자 술에 의존한 채 건강이 악화해 고독사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해=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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