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자 중 정봉주 전 의원이 유일한 정치인
용산철거민 사면 두고 심사위 내 찬반 갈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취임 후 첫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이뤄진 이번 사면의 특징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강조해 왔던 반부패 범죄 관련 사범은 제외하겠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서민 부담을 덜어주는 ‘서민생계형’이라는 점이다. 또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사면심사위원회를 실질화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뇌물ㆍ알선수재ㆍ알선수뢰ㆍ배임ㆍ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양형 강화와 사면권 제한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5대 중대 부패범죄 사면에 해당하는 경제인은 물론 정치인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정봉주 전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유일하게 포함됐다.
당초 문재인 정부의 첫 특사가 단행될 경우 정치인 가운데 정 전 의원을 포함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이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을 파헤치는 데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됐다’ 등의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2011년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정 전 의원은 2012년 12월 만기 출소했지만 2022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였다는 점에서 형평성을 고려한 사면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등 125명이 정 전 의원에 대한 사면을 탄원한 것도 이번 사면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17대 대선 사면은 이미 2011년에 단행됐고, 이후 두 차례 정치인 사면이 있었으나 그 때마다 배제되어서 형평성 차원에서 이번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반면 한 전 총리와 이 전 지사의 경우는 5대 중대 부패에 해당하지 않지만 돈과 관련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대상자에서 제외됐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서민생계형 사면이라는 대원칙 속에 공안ㆍ노동 사범도 원칙적으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이번 사면에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이 원칙을 고수해 불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게 사회통합과 국가운영에 훨씬 더 많은 가치를 가진다고 대통령이 판단하지 않았겠느냐”며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노력은 진심을 갖고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전체 대상자 6,444명 가운데 99%가 일반 형사범으로, 행정 제재로 고충을 겪는 서민들의 부담을 감경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생활고 때문에 생필품을 훔치다가 적발된 생계형 절도사범 중에 전체 피해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사건의 수형자가 다수 포함됐다. 청와대 측은 이를 ‘장발장 사면’이라고 지칭하고 “특별히 억울하게 수형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발굴하려고 애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면 대상자 중에 A씨는 소시지 17개와 과자 1봉지를 훔쳐 징역 8월형을 받았고, B씨는 시가 5만원 상당의 중고 휴대폰을 훔쳐 징역 6월형을 받았다. 또 수형 생활 중에 출산한 부녀자 가운데 수형 태도가 좋고 재범 가능성이 낮은 모범 수형자 2명도 포함됐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 대상 중 형기를 3분의 2 이상 채운 수형자는 잔형 집행을 면제했고, 형기가 2분의 1 이상 3분의 2 이하로 남은 수형자는 남은 형기의 절반을 감형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요식행위에 그쳤던 사면심사위원회의 실질화도 이번 사면의 특징으로 꼽았다. 2008년 설치된 사면심사위는 법무부 장관의 사면 상신권 행사의 적정성을 심사ㆍ자문하는 기구였지만, 심사 당일 위원들을 위촉하는 등 형식적인 운영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달 초 위원들을 위촉했고 지난주 이틀에 걸쳐 사면 대상자들의 적절성 여부를 심사했다. 또 위원들에게 위원회의 기능과 심사 절차에 대한 자료를 사전 배포해 숙지하도록 했다. 실제 심사 과정에서 용산 참사로 처벌된 철거민 26명 중 25명이 사면대상에 포함됐지만,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은 위원 간 찬반 논란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 의장은 사면이 확정된 25명과 달리 동종 사건으로 재판에 계류 중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제도 개선의 첫 단추가 사면심사위의 실질화였다”며 “이번 사면에서는 법에 따라 충실하게 사면심사위를 운영했다”고 평가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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