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은 유령이다. 한때 공산주의처럼 말이다. 악몽이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유령은 꿈 밖으로 튀어나올 지 모를 불안감을 안긴다. “그거 다 헛소리야” 탁 침 뱉고 돌아서는 단순 반론에 환호하고 싶은 건 아무래도 그 단호함이 주는 안도감 덕택일 게다.
4차산업혁명 담론 자체는 엉터리다. 여러 증거가 있지만 가령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로스토가 한국에게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라고 충고했다고 전한 1983년 8월 20일자 한 경제일간지 기사를 찾아 보여준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이 스탈린주의 아니냐는 의심을, ‘발전단계론’으로 해소시켜준 그 고마운 로스토(1916~2003)다. 그가 무려 34년 전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라 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8차산업혁명 쯤에 도전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구호는 폼날수록 좋으니 ‘10차산업혁명 시대를 먼저 열자’고 외치는 건 어떨까.
더구나 2016년 4차산업혁명론 돌풍을 한국에 던져놓은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의 책을 보면, 비록 형식적이라 해도 “기술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려면 실업과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명제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 4차산업혁명론에 이런 얘기는 없다.
실체는 없어도 현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유령이다. ‘공허’하고 ‘편향’된 4차산업혁명론도 그렇다. 김소영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이명박ㆍ박근혜의 녹색성장ㆍ창조경제 때도 그 개념이 뭐냐는 둥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국 수천억 원의 돈이 녹색성장ㆍ창조경제라는 이름 아래 움직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심지어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는 언론의 일부” 또한 “녹색성장, 창조경제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업과 시책의 혜택을 받은 당사자들”이라고 일갈한다. 4차산업혁명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거 다 헛소리”라고 욕하고 끝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홍성욱ㆍ김소영 등 6명의 학자들이 쓴 ‘4차산업혁명이라는 유령’(휴머니스트)의 주제다. 한국 과학사를 훑어주는 맥락을 건너 뛰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렇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응용과학 담당 부처(가령 ‘기술산업부’)와 기초과학 담당 부처(가령 ‘국가과학연구회’)로 분리하자, 예산 대부분은 응용과학 쪽에 주되 기초과학 분야에서만큼은 국가의 산업전략과 무관한 연구자 중심의 창의적 연구 1,000~2,000개 정도를 집중 지원하도록 하자, 최소 10년 정도는 이 정책을 뚝심 있게 묵묵히 실행해보자는 등의 내용이다. 4차산업혁명 대신 ‘기초라는 혁명’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실태와 해법’이란, 뜯어놓고 보면 늘 공자님 말씀에 가깝다. 그 공자님 말씀이 안 통해선지 책은 후반부로 가면서 서술 톤이 점점 절규에 가까워진다. 한국 기초과학의 현실 때문일 게다. 그래도, 이웃 따라 노벨상은 타보고 싶지 않을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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