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朴정부 양적완화 갈등 산물
現정부 ‘시장 중심 구조조정’ 의지
지난해 ‘한국판 양적완화’ 논란을 빚으며 정부와 한국은행의 치열한 갈등 속에 탄생했던 자본확충펀드가 결국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은 채 조용히 사라지게 됐다.
한은은 28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 지난해 말 한차례 연장해 올해 말까지로 정해져 있던 총 11조원 규모 자본확충펀드의 시한 연장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작년 7월 출범한 자본확충펀드는 올해 말로 1년 반 만에 종료된다. 한은 관계자는 “그간 한 번도 펀드 자금지원 요청이 없었고, (이번에 종료하는 데 대한) 관계기관 논의에서도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본확충펀드는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에서 비롯됐다. 애초 정부ㆍ여당에선 한은이 돈을 찍어 조선ㆍ해운 구조조정 과정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국책은행(산업ㆍ수출입은행)에 출자하는 형태가 논의됐다. 그러나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직접출자 방식은 중앙은행 운영 원칙에 어긋난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국회 동의를 거쳐 재정으로 할 일이다” 등의 명분을 내세운 한은의 강력한 반발로 진통 끝에 결국 ‘대출 형태’의 절충안이 마련됐다. 펀드는 자산관리공사가 만들고, 재원은 한은이 10조원을 기업은행에 대출하면 여기에 기업은행이 자산관리공사 후순위대출 1조원을 보태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적인 압박에도 이주열 총재가 “직을 걸고 막겠다”고 선언할 만큼 양측간 갈등이 심했다. 결국 한은은 펀드 설립에 동의하는 대신 ▦부실기업 지원이 아닌 ‘금융안정’ 목적임을 명시하고 ▦자금지원마다 금통위 의결을 거치며 ▦실세금리보다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뒀다.
자본확충펀드의 소리 없는 퇴장은 기업 구조조정을 국책은행 대신 시장 중심으로 처리하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과도 무관치 않다. 한은 관계자는 “작년 이후 국책은행에 정부가 계속 출자를 해 자본건전성이 개선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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