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26일(현지시간) 북한과 미국의 갈등 해소를 위한 협상의 중재국으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을 대폭 제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2397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지 1주일 만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섬에 따라, 북미 간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로이터ㆍAFP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러시아의 준비는 확실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북미) 양국 사이에서 혼자만의 의사로 중재자가 될 수는 없다”면서 북한과 미국이 원하기만 한다면 러시아가 협상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내비쳤다.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리아노보스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간 대화를 촉구하면서, 이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북한과의 ‘협상 시작’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통화에서 틸러슨 장관에게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적 레토릭(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악화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며 “가능한 한 빨리 ‘제재의 언어’에서 협상 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외무부는 밝혔다.
이 같은 러시아 정부의 입장 표명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 국제사회의 제재 일변도 대응으로 한반도 긴장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은 외교적 노력 없이 강력한 제재로 치닫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반대해 왔다. 러시아는 안보리의 대북 결의 2397호 채택에 협조하면서도 “긴장 악화를 막으려는 우리의 요구는 불행히도 수용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 저스틴 히긴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이날 “미국은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북한과 연락할 능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북한이 선택 가능한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이해하기 바라지만, 신뢰할 만한 협상으로 복귀할지 말지는 북한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의 제안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힌 것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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