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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아날로그] "어떻게 나올까" 설레는 기다림, 그 불편함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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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아날로그] "어떻게 나올까" 설레는 기다림, 그 불편함이 끌린다

입력
2017.12.26 17: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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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중심 즉석사진 인기

'퇴물 취급' 필카 판매량도 급증

아날로그 사진 앱 '구닥'

유료인데도 100만건 다운로드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역 인근 한 즉석사진 부스에서 여대생들이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역 인근 한 즉석사진 부스에서 여대생들이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실물로 사진을 받아본 것은 여권용으로 촬영한 증명사진 이후 처음이에요.”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역 인근 한 즉석사진 부스. 동갑내기 친구와 방금 찍은 흑백 즉석사진을 손에 쥔 대학생 김서희(22)씨는 “사진이 꽤 잘 나왔다”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네 컷 짜리 사진에는 김씨와 친구가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입술을 쑥 내미는 익살스러운 모습 등이 담겼다. 촬영비용은 4,000원. 흑백ㆍ컬러사진 여부를 선택한 뒤 10초 간격으로 연달아 네 장을 찍고 15~20초 기다리면 사진을 세로로 이어 붙인 출력본이 나온다. 그는 “다이어리에 넣어 놓고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좋은 추억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씨가 떠난 뒤에도 2,3명씩 짝을 지은 20ㆍ30대들이 줄지어 즉석사진기를 찾았다. 이날 단짝친구와 즉석사진을 찍은 대학생 이민경(23)씨도 “전자책보단 직접 책장을 넘겨야 책 읽는 맛이 나는 것처럼, 스마트폰 화면 속 사진보단 실물로 접할 수 있는 사진이 훨씬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간직하고 싶은 사진’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즉석사진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업계에선 ‘인생네컷’, ‘포토마통’, ‘포토그레이’ 등 400개가 넘는 즉석사진기가 전국에 설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용승 포토마통 대표는 “불과 6개월 만에 즉석사진기 설치대수가 7배(6월 10대→12월 70대)로 늘었다”며 “디지털세대인 10ㆍ20ㆍ30대에게서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후지필름의 일회용 필름 사진기인 퀵스냅. 한국후지필름 제공
후지필름의 일회용 필름 사진기인 퀵스냅. 한국후지필름 제공

이러한 열기는 ‘퇴물’로 취급됐던 필름 사진기에도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한국후지필름에 따르면 일회용 필름 사진기인 퀵 스냅의 1~7월 국내 판매량은 전년보다 200% 급증했다. 컬러필름(C200) 역시 같은 기간 판매량이 30% 늘었다. 한국후지필름 관계자는 “간편하게 필름 사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과 필름 사진기 입문용으로 소문이 나면서 퀵 스냅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기 판매점이 몰려 있는 서울 남대문시장의 K카메라 대표도 “니콘의 인기 필름 사진기인 FM2 가격(40만원 초중반)이 연초보다 10만원 올랐다”며 “더 이상 생산이 안 돼 물량은 한정돼 있는데 구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가격이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필름 사진의 매력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불편함’에 있다. 사진 필름은 24장ㆍ39장 등 찍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그만큼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데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찍은 뒤 바로 잘 나왔나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사진을 삭제해 버리는 디지털 카메라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미놀타의 필름사진기(X-300)를 구매한 30대 직장인 김재용씨는 “필름 사진기에 취미를 붙이고 난 뒤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신중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작은 것 하나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필름사진기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대학생 박기범씨도 “현상소에 필름을 맡긴 뒤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 하며 기다리는 시간 역시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기다림을 “설레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아날로그 사진이 부활을 꿈꾸면서 관련 제조업체 역시 날개를 펴고 있다. 대표적인 필름 제조업체인 코닥은 1940대에 출시해 필름 사진업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오다 2012년 단종됐던 베스트셀러 ‘엑타크롬 필름’을 내년 다시 선보인다. 즉석카메라의 대명사 폴라로이드는 40년 전 즉석사진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모델(원스텝 랜드 카메라 1000)의 디자인을 본 딴 ‘원스텝 2’를 최근 출시했다.

아날로그 사진 애플리케이션 '구닥'. 스크루바 제공
아날로그 사진 애플리케이션 '구닥'. 스크루바 제공

아날로그 사진의 불편함이 디지털 시대와 만나 ‘디지로그’(digilogㆍ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로 진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7월 앱스토어에 출시된 아날로그 사진 애플리케이션 ‘구닥’이다. 미국의 코닥과 구닥다리란 말을 섞은 이 앱은 스마트폰을 통해 필름카메라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앱을 켜면 24장의 사진까지 찍을 수 있다. 필름 카메라의 필름 한 롤이 24장인 것과 같다. 다시 24장의 사진을 촬영하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꼬박 3일이 걸린다. 당연히 미리보기 기능은 없다. 1.09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유료 앱이지만 출시 한 달 만에 구매 건수가 42만5,000건을 기록했고, 9월에는 100만건도 넘겼다.

구닥을 만든 국내 스타트업 ‘스크루바’는 촬영한 사진 확인까지 3일이 걸리게끔 만든 이유로 “망각의 시간을 뚫고 온 사진 한 장, 한 장이 추억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설명했다. 머리에서 기억이 지워지기 시작하는 3일째 다시 사진 촬영 당시를 떠올려주면 해당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그 순간을 간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느린 시선으로 카메라 렌즈에 비친 무언가를 기억하고, 간직하려는 아날로그 사진의 매력을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 ‘대박’의 비결이 됐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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