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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설거지

입력
2017.12.26 13:4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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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칭찬 받고 싶어 한다. 쉰이 넘은 나도 칭찬을 받으면 고래처럼 춤까지 추지는 않더라도 으쓱 하는 마음과 함께 더 잘하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칭찬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칭찬도 악하게 쓰이기도 한다. 칭찬의 효용을 잘 아는 사람들이 때때로 남의 노동력을 빼먹는 약은 수로 쓰기도 하는 것. 구두를 잘 닦아놓은 아이에게 정당한 보상 대신 몇 마디 칭찬으로 때우려는 심보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게 버릇이 되면 젊은이에게 몇 마디 칭찬과 더불어 희망고문까지 하게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물론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이다.

아무리 약은 사람이라도 아무 때나 칭찬하지는 못한다. 잘한 티가 확 나야 칭찬을 할 수 있는 법이고 흰소리로 하는 칭찬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칭찬 받기 가장 힘든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 하여 가정주부다. 요즘은 덜 하지만 예전에는 드라마에서 귀가한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늘 뭐 했어?” 정말 모르나? 가정주부는 하루 종일 일을 한다. 그것도 혼자서. 기껏해야 라디오나 들으면서 말이다. 애들 밥해 먹이고 청소하고 설거지한다. 남의 애도 아니고 자기애들 밥 먹이는 거야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라고 해도 청소와 설거지까지 즐거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소와 설거지는 잘해야 본전이다. 잘한 티는 안 나지만 조금만 소홀해도 금방 티가 나서 마치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보인다. 수십 개의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했지만 그릇 하나에 티가 조금만 남아 있어도 설거지 대충한 사람 취급 받기 일쑤다. 게다가 설거지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접시나 잔이 곧잘 깨지기 때문이다. 금전적 손해뿐만 아니라 다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 며느리는 설거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라든지 “우리 아내는 설거지 장인이죠. 저는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어요” 같은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설거지에 대해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 하늘이 정한 것”이라는 유명 정치인의 끝 모를 막말이다.

서양 음식은 설거지가 간단하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깨끗이 닦아 먹기 때문에 그릇에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우리 음식은 어떠한가? 한국 음식을 먹고 난 후에 생긴 빈 그릇을 보고 있자면 심란해 진다. 그릇에 떠 놓은 찌개 건더기가 남아있고 어떤 그릇도 깔끔한 게 없다. 다른 사람이 먹던 그릇을 설거지하는 일은 절대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설거지는 청소나 분리수거보다도 더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데 설거지해줬다고 고마워하거나 설거지 잘했다고 칭찬하는 일은 없다. 가끔 가다가 설거지 때문에 칭찬 받는 사람들은 명절 때 딱 한 번 도와준 남자들뿐이다. 설거지만큼 이 세상에서 불평등하고 부당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콘도를 빌려 쓴 다음에도 설거지는 깨끗이 하고 가는 게 상식이다. 물론 관리인이 설거지를 다시 하겠지만 말이다. 가끔 설거지를 하지 않거나 대충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명랑 사회 지수가 낮아지곤 한다. 하다못해 콘도에 묵었을 때도 이럴진대 나라를 운영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가 만들어낸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관할 것은 보관하고 넘겨줄 것은 넘겨주는 게 상식이다. 그리고 자기가 추진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추진하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정보를 넘겨주는 게 옳다. 그래야 새 정부는 새 일을 할 테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설거지 정부가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기꺼이 작정한 일이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라고 하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보다 ‘적폐청산’이라는 모토가 먼저 떠오르겠나. 적폐는 설거지감이다. 씻어 없애야 한다. 하지만 설거지는 재미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다.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조금만 못 하면 욕먹는 일이다. 게다가 설거지를 보복이라 부르면서 훼방을 놓기까지 한다. 설거지감이 나라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제 관계에도 쌓여 있다. 사드 배치가 옳건 옳지 않았건 간에 이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가 심각하다. 대통령이 설거지를 하러 중국에 갔다. 설거지를 하면서 수모도 당했다. 다행히 수모적 상황을 우호적 관계로 잘 바꿔냈다. 문재인 정부는 설거지에 능한 정부로 보인다.

언제까지나 설거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이왕 시작한 설거지는 철저히 잘 해야 한다. 설거지 열심히 잘하는 며느리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며느리를 아끼는 가족들이 과하게 편들다가 일을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조용히 도와주면 된다. 며느리가 핀잔 좀 들었다고 불같이 일어서면 며느리만 외로워진다. 지금까지 일하는 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니 믿고 응원하면 될 것 같다.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옹호와 비판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반박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자들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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