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44)은 영화 ‘강철비’(상영 중) 개봉을 앞두고 바쁜 스케줄을 쪼개 방글라데시로 날아갔다. 미얀마 정부의 인종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구호활동을 펼치고 돌아온 그는 곧바로 이어진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도 난민의 현실을 알리는 데 진심을 할애했다.
KBS 뉴스에 출연해서는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바란다”며 파업 중인 노조원들에 힘을 실었고, MBC ‘섹션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선 “MBC 정상화를 축하”했다. 이런 그의 소신이 대중의 환호와 지지를 얻는 건, 그가 경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를 향해 말할 때 한층 유연해진다.
‘강철비’가 정우성의 특별한 선택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한반도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그린 이 영화로 정우성은 분단 현실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오락물의 방식으로 말이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정우성은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한 권력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 역을 제안 받았을 때 정우성은 주저하지 않았다. “시대적 화두를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입증된 사실과 정보로 풀어내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이 느껴지더군요. 그와 동시에 현실에 억지로 타협하지 않은 발상이 흥미로웠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북한 병사의 판문점 귀순 사건과 북한의 6차 핵실험 등 영화 속 설정과 흡사한 상황이 현실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영화 촬영은 이보다 한참 전이었다. 정우성은 “그만큼 취재가 탄탄하다는 방증 아니겠냐”고 했다. 하지만 논쟁적인 결말에 대해선 “북핵 해결에 그런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우성은 순수하고 강직한 엄철우에 맞춤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은 파트너 곽도원은 “정우성의 눈빛만 봐도 울컥하더라”고 했다. 정우성은 “인물의 삶에 천착하는 것이 배우가 해야 할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2014~2016년 사이 평양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따로 찾아보면서 동시대 평양 남자들의 말투부터 익혔다. 타격감 넘치는 액션과, 눈빛으로 빚은 감성 연기도 탁월하다.
40대가 되면서 정우성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배우가 되느라 바빴던 20대, 개인사에 열중했던 30대”를 지나, 이제는 “외모를 스스로 희화화”할 만큼 여유를 갖게 됐다. 그는 “영화의 사회적 책임을 20대 때 깨달았지만, 영화가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40대가 돼서야 알게 됐다”고도 했다.
“배우이기에 잘생겼다는 말보다 연기 잘한다는 말이 듣고 싶다”는 정우성은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다음 작품 아닐까요. 언제나 이 질문엔 ‘다음 작품’이라고 답하게 될 것 같네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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