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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안전을 위한 오판을 권장하는 사회

입력
2017.12.25 11: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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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탄식을 부른다. 세월호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이라 소식을 전해 듣는 많은 이들이 함께 아파하는 듯하다. 이러한 아픔과 별도로 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대형 참사들이 자꾸 반복되는지 개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불의의 사고였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보도될 수 있는 사건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예고된 인재, 대형 참사로 번지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사고 발생 경로도 이제는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탈법운행이나 부실시공→관리감독 소홀→사고발생→초동 대응 실패→비상탈출 수단의 미작동→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공식 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2층 통유리를 조기에 깨고 진입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책임 있는 검증작업이 필요해 보이지만, 이번 사건 역시 기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기존 대형 화재 사고들과 마찬가지로 소방도로의 불법주차 차량, 차단되거나 제한된 비상구 문제 등이 이번 사건을 키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언론에서 나오는 해법들 역시 공식처럼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위기관리 매뉴얼의 정비→위기대응 인력과 재원 확보라는 공식 패키지다. 이렇게 백 번 지당한 대책들이 왜 사고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될까. 우선, 위기대응체제를 주도해야 할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정치적 책임 공방에 몰두하다 사건사고 발생 전후에 나온 다양한 대책들은 뒷전으로 밀려왔다. 또한 대책으로 제시된 인력 확대나 재원 확보 문제가 공공 일자리 정책으로 변질되는 것도 문제다.

기존에 제시된 대책들이라는 것이 대체로 사후 대응 차원이지 위기 예방이나 사전 징후 시점의 솔루션으로 보기 어렵다. 모두가 예방 및 사전 대응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대목에서 우리사회는 “설마”라는 안전 불감증에 책임을 돌려왔다. 부분적으로 맞는 얘기지만 단순한 경각심의 부족으로 돌리기엔 충분치 않다. 반복되는 안전사고와 특히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점진적이나마 사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개선되고 있다.

예방중심, 초기대응 중심의 위기대응체계를 갖추려면 무엇보다 예방대응의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는 일상 상황에서 선(先) 보고, 후(後) 조치를, 위기 상황에선 선(先) 조치, 후(後) 보고를 행동 원칙으로 강조한다. 이 원칙은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다. 위기상황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기에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이기 때문에 선 조치에 주저하게 된다.

또한 선 조치가 오판으로 판명 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문책, 물질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다. 판단의 근거는 불확실한데 오판시 돌아올 불이익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센티브 구조에서, 먼저 행동을 취하라고 강조해봐야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번 사건에서도 소방대가 불법 주차한 차량들에 대해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접근이 지체된 데에는 파손 등에 따른 부담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화재대응 시 소방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에 대한 훼손 책임을 면제하게 해주자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더 확실한 보장이 필요하다. 위험예방기제가 작동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건, 시민이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오판은 권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제도를 고안하자. 선의의 양치기들이 존중 받는 사회로 한 걸음 내딛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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