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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안경과 휠체어

입력
2017.12.25 10:5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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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공연이 이어지면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오기도 한다. 요즘 같은 여행 비수기에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의 숙소도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 숙소에서 창문을 열면 요양병원이 보인다. 유명 관광지에 자리잡은 요양병원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얼마 전까지 이 숙소에 놀러 왔던 사람들이 저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수도 있겠구나. 이 밤이 너무 길고 쓸쓸해서 저 방 불빛은 꺼지지 않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점점 필요해지는 게 누군가의 보살핌이다. 어릴 때부터 몸과 정신이 약한 사람은 평생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 보살핌의 주체에 사회가 얼마만큼 참여하고 있는지에 따라 국가 전체의 행복지수가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휠체어를 탄 지인과 꽤 비싼 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한 고급 식당이었다. 모두들 품격 있는 옷차림과 표정을 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식사 내내 계속 우리를 쳐다보는 테이블이 있었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에 빠져있는데 엄마와 아빠는 마치 우리를 봐야 음식이 잘 씹히는 것마냥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당당하고 유쾌하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그리도 신기했을까. 내가 여러 번 눈을 마주치며 소심한 경고를 보냈음에도 부부는 그들의 시선을 즐겼다. 참다 못한 내가 한마디 하려고 일어서자, 마주 앉은 그가 차분히 말했다. “그냥 둬.”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왔을 그는 여유 있게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다시 그와 유쾌한 대화에 합류했다.

건너편 테이블 가족이 먼저 자리를 뜰 때, 뒷모습을 보며 속말을 외쳤다. ‘한번이라도 남을 위해 울어 보았니. 그러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네 인생을 뜨겁게 감싸주지 않을 것이다. 속히 그 불행의 가시밭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네 자식에게 아름다운 인생은 이런 거란다 한번이라도 보여준 적 있느냐. 내 앞에 있는 이 분은 너보다 천만 배 긍정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온 분이란다. 네가 쓰고 있는 안경과 이 분의 휠체어는 그다지 다르지 않아. 너도 나도 그런 점에서 장애인이야.’

공연장 어디를 가든 음향장비를 옮기는 일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한번에 여러 장비를 싣기 위해 대형 카트를 이용하는데, 그 동선이 휠체어가 가는 길과 똑같다. 나는 올해 300번의 카트를 끌었다. 그 중 삼분의 일 가까이가 카트 접근이 어려운 길이었다. 그런 곳은 일일이 장비를 들어 옮겨야 했는데, 내가 만약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목적 장소까지 들어가기 쉽지 않았을 건물이었다.

특수학교에 공연을 가면 당연히 장비 이동이 제일 편하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무슨 노래를 들려주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수록 마음을 담아 가사와 음을 전달한다. 가사와 음은 껍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이어진 우리는 끝나고 이별을 아쉬워한다. 그래서 해마다 방문하는 특수학교가 몇 곳 생겼다.

장애인의 정당한 교육 권리를 막는 소식들이 들린다. 서울에 15년째 특수학교가 신설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믿겨지지가 않는다. 신이 세상을 내려다볼 때 세상 사람 모두가 이모저모의 장애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권리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장애인임을 깜빡 잊고 살 때, 동화를 읽고 만든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라는 노래를 스스로에게 불러준다.

“그 사람의 의자엔 바퀴가 달려있어요. 성큼성큼 자기만 잘난 걸음이 아닌 둥글둥글 겸손으로 굴러가지요. 멀리 가긴 어렵지만 끝까지는 갈 수 있죠. 빨리 갈 순 없지만 언젠가는 도착하죠. 누구보다 맑은 마음의 사람. 힘센 팔로 언덕을 이기는 그 사람은요 내겐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랍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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