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단속구간 아니라 단속 의무 없어…구간 지정권한은 경찰에”
경찰 “단속구간 지정은 지자체 요청 있어야”
소방당국 “우리는 주요 구간 정해 계도할 뿐”
제천 화재 참사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불법주차 문제(본보 23일자 2면)를 두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당국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식이면 소방차와 구조인력의 현장 접근을 막아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하는, 또 다른 참사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21일 화재 신고 접수는 오후 3시53분쯤으로 소방대원들은 신고 접수 7분 뒤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차량 중엔 6m 폭 건물 진입로 양쪽을 메운 불법주차 차량 탓에 지휘차량과 펌프차량만 먼저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정작 구조 핵심 장비인 굴절사다리차 등은 보다 못한 시민들이 방해 차량을 직접 이동시키는 동안 500m를 우회하면서 30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한 유가족은 “좁은 도로 양쪽으로 주차 차량이 늘어서 있어 마주 오던 차끼리 부딪히는 일이 빈번했다”며 “이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방당국과 지자체 등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고 발뺌하고 있다. 불법주정차량 단속을 담당하는 시는 “불법주차는 맞지만 단속구역이 아니다”고 했다. 도로교통법(제32조)상 주정차단속구간 설정은 지방경찰청장 권한으로 경찰이 단속구간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상, 시청도 단속할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반면 경찰은 “지자체 요청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정차로 진입을 못할 정도면 지자체가 미리 파악하고, 단속구간 지정을 요청했었어야 한다”며 “경찰은 (요청이 접수되면)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를 열어 살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내년 시책사업 중 하나로 상가밀집지역 등에 대한 주정차단속을 대대적으로 공언했던 소방당국도 “우리 역할은 시민의식 강화 정도로 제한적”이라며 발을 뺐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주요 구간 몇 군데를 지정하고 순차적으로 단속을 하는데 화재 현장 인근은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내 소방도로 확보 여부 등을 잘 알고 있는 소방서가 주정차단속구간 지정 권한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처럼 소방서가 신고를 접수하면 차량견인업체가 함께 출동해 방해 차량을 견인하거나, 때에 따라 차량 파손도 가능하게끔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천=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