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견서 400장에 한해 2억원 수입 교수도
금감원, 보험사 의료자문 남발 관행에 제동
최근 교통사고를 당한 김모씨는 사고를 낸 가해자쪽 보험사와 합의금을 논의하다 분통을 터트렸다. 보험사가 김씨의 부상에 교통사고가 미친 영향이 30%에 불과하다는 의료자문 서류를 내세우며 합의금을 대폭 깎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국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김씨 손을 들어준 조정 결과가 나온 뒤에야 제대로 된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다.
국내 보험사들이 김씨 같은 보험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첨부한 진단서가 의심쩍다며 자체적으로 별도의 의료자문을 요청하는 건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의료자문을 해준 의사에게 보험사가 지급하는 자문료도 급증하는 추세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는 2014년 5만4,399건에서 지난해 8만3,580건으로 55%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엔 작년의 절반을 훨씬 넘는 4만9,000여건을 기록했다. 보험사들이 의료자문 기관에 지급한 자문료는 2014년 91억원에서 작년 155억원으로 70.3% 늘었고, 올 상반기에만 98억원에 달했다.
보험사들은 엉터리 진단서를 통한 보험사기와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이 같은 의료자문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런 관행이 ‘거절을 위한 거절’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의료자문의 60~70%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인데, 보험사들은 이를 근거로 100건 중 60∼70건꼴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의료자문은 의사에게도 쏠쏠한 수입원이다. 자문의 대부분은 보험사들이 넘겨준 서류만 보고 소견서를 써주는데, 그 대가로 건당 30만~100만원의 자문료를 챙겼다.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지난해 400건의 소견서를 쓰고 대략 2억원이 넘는 수입을 챙기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최초 진단서가 위ㆍ변조되지 않았다면 보험금을 무조건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년 1분기까지 만들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진단서를 뒤집을 정도의 객관적 반증자료를 보험사가 제시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약관대로 무조건 지급하게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땐 제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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