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우리가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어요. 저도 경기필과 함께 40대가 됐고, 단원들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인생이 무르익었거든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경기필)의 연주가 있던 2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 곳곳에서는 훌쩍이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주는 감동도 있었지만, 성시연(41) 경기필 예술단장 및 상임지휘자의 마지막 연주라는 아쉬움도 컸다.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성 지휘자를 21일 서울 역삼동 인근에서 만났다. “단원들이 저를 잘 떠나 보내주기 위해 온 집중을 다해 연주하는 걸 저도 느꼈거든요. 그 마음이 객석에까지 전달 된 것 같아요. 제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함께 성장한 4년
2014년 1월, 성시연 상임지휘자는 국내 국ㆍ공립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수장이 되며 출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한 악단의 상임지휘자라는 역할은 그 자신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는 경기필을 처음 맡았을 때 인지도 향상과 정체성 확립을 목표로 뒀다고 했다. 취임연주회에서부터 “도약하고 비상하는 돌파구를 만들자는 취지”로 말러의 ‘부활’을 선곡했다. 4년 동안 그는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단원들과 함께 이뤄왔다. 경기필은 지난 9월 독일 베를린 무지크 페스티벌에 초청돼 작곡가 윤이상의 ‘예악’과 ‘무악’ 등을 연주했다. 아시아 오케스트라 가운데 이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는 경기필이 처음이다. “경기필의 하이라이트로 꼽아도 될 만한 일”로 생각될 정도로 영광스런 자리였다. “한국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한국 작곡가 윤이상의 곡을 연주할 수 있던 그 순간이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이런 순간이 언제 또 올까 했어요.” 성 지휘자는 가장 기억에 남은 연주로 취임연주회와 베를린에서의 연주, 그리고 20일의 마지막 연주를 꼽았다.
성 지휘자는 경기필의 장점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어 나가려 노력해왔다. 국내에서 드물게 4관 목관 편성이 있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라는 특징을 살려 대작 전곡 연주를 시도했다. 인공지능(AI)과 인간의 바둑대결을 보며 AI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노년층을 위한 콘서트 등을 병행해 클래식 음악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성 지휘자와 함께 한 4년 동안 경기필의 기량은 눈에 띄게 향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초 상임지휘자 임기가 2015년 12월까지였던 성 지휘자는 한 차례 연임했다. 경기필 예술단장에는 연임 제한이 없지만 그는 이번에 경기필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로 했다. 경기필에 대한 애정이 담긴 결정이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을 보면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헤어지는 경우가 드물죠. 경기필과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은 뒤 더 많은 음악적 영감을 줄 수 있는 다음 지휘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게 단원들에게도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여성 상임지휘자’
지휘는 클래식계에서도 성별에 의한 장벽이 마지막 보루처럼 남아 있는 분야다. 성 지휘자는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그 벽을 깨 왔다. 2007년에는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137년 역사상 최초 여성 부지휘자에 위촉됐다. 20대 중반까지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상임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의 비디오를 보고 지휘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지휘로 전향하려는 그에게 당시 주위에서는 만류의 목소리가 더 컸다. “지휘는 어려운 일이다. 여성에게는 더욱 어렵다”는 이유였다.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한 2001년 당시, 이 학교에 지휘를 전공한 여성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가 사사한 롤프 로이터 교수가 제자를 양성한 40여년 동안 성 지휘자는 유일한 여성 제자였다.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에서도 지원자 500여명 중 본선에 오른 여성 지휘자는 한 손가락에 꼽혔다. 그가 우승했을 때 “여성이 이 곳에서 상을 타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는 독일 인사들의 축하인사도 있었다.
경기필을 이끌며 자신의 성별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없다고 성 지휘자는 말했다. 다만 “외부에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점차 들긴 했다. 성별로 특권을 얻으려 한다는 등의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 오히려 여성성을 완전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러 남성처럼 보이려 하지 않고 스스로가 되라(to be yourself)는 조언에도 공감하고 있다. “그 사람 자체로 매력이 풍겨야 음악에서도 매력이 풍길 테니까요.”
‘성시연 신드롬’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점차 ‘금녀’의 영역이라는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는 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럽에서도 떠오르는 여성 지휘자를 찾는 것이 트렌드다. 성 지휘자는 “여성들이 용기를 갖고 지휘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건 좋은 현상이다. 이런 고정관념이 이제 깨질 때도 됐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도전하라”고 권유했다.
앞으로의 성시연
성 지휘자는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타인에게는 너그럽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다. 연주가 잡혀 있을 땐 수면 시간이 3시간도 되지 않는다. 오전 4시에 일어나 서재로 직행한다. 새벽부터 ‘공부’하고 출근해 리허설을 하고 돌아와 다시 공부한다. 지금보다 젊었을 땐 술자리도 즐겼지만 이제는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도 스스로 ‘정말 행복한가’ 물어보는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제가 꿈꿔온 삶은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건데, 악보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문득 제 삶이 정말 보람이 있나 고민해 보게 되요. 그러다 정말 좋은 연주를 하게 되면 ‘이 하나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 생각도 들고요. 어쩔 수 없는 삶의 굴레 같아요. 음악인들은 그걸 위해 사는 거고요.”
경기필을 떠난 뒤 해외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라는 꿈을 위해 한국 밖으로 나간다. “경기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정과 성의를 다 쏟아서 도전해 보려고요. 오케스트라든 극장이든 열어놓고 있어요. 만약 오페라 극장으로 간다면 정말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자겠지만 그 정도 각오는 돼 있는 것 같아요.”
그는 6월까지는 세계 곳곳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동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극장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고, 미국 시애틀 심포니 공연 일정도 잡혀 있다. 그는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하자”는 목표를 마음에 담고 내년 1월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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