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종료되는 국회개헌특위의 활동기간 연장문제를 놓고 여야가 거세게 대립해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내세운 '내년 6월 지방선거 및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공약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발단은 자유한국당이 엊그제 의원총회를 열어 "지방선거와 붙여 개헌 투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홍준표 대표의 주장에 따라 '국회 합의에 의한 개헌 시기 결정과 특위 활동기간 연장'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이다. 민주당은 특위 종료 및 정부 주도 개헌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한국당의 입장은 정치적 계산에 따른 대국민 약속 파기인 만큼 '선거-개헌 동시 실시'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특위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홍 대표 등 한국당이 동시 실시를 기피하는 이유는 야당의 지방선거 카드인 '정권 견제론'이 개헌 투표에 묻혀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여야의 이견이 첨예한 상황에서 개헌을 서두르는 것이 야당에 유리할 게 없다는 계산도 있다. 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 즉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반면, 민주당은 지방분권을 전제로 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까닭에 여당은 야당이 동시 실시 약속을 하지 않을 경우, 예산만 낭비하며 헛바퀴 도는 국회특위 가동을 중단하고 청와대 등 정부 주도로 개헌안을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이미 작업에 돌입했다는 얘기도 있다. 여권으로선 문 대통령의 공약을 지켜야 하고 또 지방선거 시기를 넘기면 임기 중 개헌도 물 건너 간다는 답답함과 조급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답이 아니다. 국회 발의든 정부 발의든,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국민투표에 붙여질 수 있어서다. 야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한 일인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시늉으로 체면만 차리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제 정세균 의장과 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이 갈등만 키우고 파행으로 끝난 것은 현 상황을 잘 보여준다.
최선의 해법은 여권이 일단 특위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야당의 동시 실시 약속 이행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것이다. 야당 역시 '정권교체론 희석' 등 몽니에 불과한 변명을 접고 동시 실시를 위해 책임과 성의를 다해야 한다. 끝내 동시 실시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면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한 뒤 일정을 밝히는 것이 도리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습성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최대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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