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은행 노동이사제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엔 “입법 논의가 우선” 국회로 공 돌려
“인터넷은행 한해 은산분리 예외 적용돼야” 주장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스스로 설치한 자문기구(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발표한 핵심 권고사항에 대해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21일 내놓았다. 혁신위는 전날 최 위원장에게 ▦민간은행에도 근로자추천이사제(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원칙을 유지할 것 등을 권고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위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면서도 “혁신위는 실현 가능성보단 향후 나아갈 방향에 초점을 두고 권고안을 만들었지만, 집행기관인 정부는 법적 문제 등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먼저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권고에 대해 최 위원장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근로자추천이사제는 근로자가 추천한 내외부 인사를 금융사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걸 일컫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이사제(노조가 내부인사를 이사로 추천)와 개념이 비슷하다.
최 위원장은 “금융권은 급여ㆍ복지 수준이 다른 업종보다 양호하고 노사 갈등도 대부분 급여인상을 둘러싼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점검, 합의가 이뤄져야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약 4조5,000억원)에 과징금(차명 자산의 50%)을 물려야 한다는 혁신위의 권고엔 “입법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국회로 공을 돌렸다. 국회가 과징금을 물릴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따르겠지만 정부가 유권해석 등의 방식을 동원해 과징금을 물리진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다. 현행법은 금융실명제(93년 8월) 이전에 비실명 자산을 둔 거래자가 법이 정한 기간에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경우에만 과징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만약 이를 넘어서 정부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리면 형평상 동창회 통장처럼 선의의 차명계좌에까지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 위원장은 “입법을 통해 이런 논란들이 해결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혁신위가 “은산분리 완화를 한국 금융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보지 않는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선 “은산분리 완화 원칙은 존중되는 게 맞지만 인터넷은행에 한해선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인터넷은행이 영업해 온 걸 보면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없고 오히려 금융권에 좋은 영향을 줬다”며 “국회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이 금융지주사를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권 반발이 거세다는 지적엔 “개인의 반발이 아닌가 싶다”며 “특정인의 진퇴를 염두에 두는 게 아니란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전날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하나UBS자산운용의 지분을 하나금융투자가 인수하기 위한 대주주 변경승인 심사를 보류한 것과 관련해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검찰 수사 등이 진행 중일 땐 심사를 중단하게 돼 있기 때문이지 하나금융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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