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는 폴란드를 겨냥해 결국 최후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회원국 제재에 최후의 수단으로 꼽히는 리스본조약 7조를 발동, 최악의 경우 EU 회원국으로서 폴란드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강도 높은 제재 절차에 돌입할 전망이다.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20일(현지시간) 가지회견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리스본조약) 7조 1항을 발동하게 됐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면서 폴란드를 대상으로 한 ‘7조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EU 역사상 전례가 없는 조치로, 그만큼 폴란드의 법치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의미다.
티메르만스 부위원장은 “2년간 13개 법안이 입법됐는데 모두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력분립을 중대한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었다”라며 “폴란드의 사법개혁은 사법부를 집권당 아래에 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티메르만스 위원장은 지난 7월 한때 EU가 7조 발동을 고려했다가 접었지만,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당시 폴란드 의회를 장악한 집권 법과정의당(PiS)이 통과시킨 대법원 개혁법은 법무부장관에게 대법관 교체권을 부여하는 등 의회가 사실상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다만 이 때는 법과정의당 출신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이 발효되진 않았다.
이에 법과정의당은 법원의 은퇴연령을 70세에서 65세로 낮추는 법안을 하원과 상원에서 차례로 통과시켰다. 임기 연장은 가능하지만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최악의 경우 대법관 40% 가량이 일시에 법복을 벗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며 그 빈 자리는 집권당의 입맛에 맞는 판사가 채울 것이란 게 야당 시민연단(PO) 등의 주장이다. 더구나 이 법안은 두다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법안이기에 7월과 달리 발효가 확실시되고 있다.
리스본조약 7조가 최악의 경우 폴란드의 회원국 투표권까지 박탈할 수는 있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일단 EU 회원국 28개국 중 22개국이 EU 집행위의 7조 발동 제의에 동의해야만 공식적인 경고를 내릴 수 있게 되는데, 여기엔 무리가 없다고 집행위는 판단하고 있다. 다만 투표권 박탈은 다른 27개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폴란드 법과정의당 정부와 ‘우파동맹’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미 폴란드의 투표권 박탈을 막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티메르만스 부위원장도 “극단적인 제재 발동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며 “향후 전개는 폴란드의 태도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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