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행실이 불량한 학생을 계도할 때 이름을 적는다(taking names)란 표현을 쓴다. 비슷한 일이 유엔에서 일어날 상황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반대하는 모든 국가들의 ‘이름을 적겠다’는 표현으로 유엔 회원국 압박에 나섰다.
헤일리 대사는 1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 18일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루살렘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진을 올리고 “유엔에서 우리는 항상 더 많이 활동하고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기를 요구 받았다. 미국인들의 의지에 따라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심지어는 대사관의 위치를 결정할 때까지 우리가 도운 국가들의 표적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목요일(21일) 우리의 결정을 비판하는 투표가 있다. 미국은 이름을 적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AFP통신이 확보한 몇몇 유엔주재 대사들을 향한 서신에서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투표를 신중히 지켜볼 것이며 우리에 반대해 투표하는 나라들에 대해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라며 “이 문제에 대한 모든 투표에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찬성표를 던지지 말라는 엄포를 놓은 셈이다. 특히 트위터에 적은 ‘이름을 적는다’는 표현도 외교 현장에서 쓰이기에는 지나치게 격이 낮은 표현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유엔은 21일 이슬람협력회의(OIC)와 아랍 국가들을 대표한 예멘과 터키의 요청으로 긴급총회를 열고 미국의 반대로 안보리 채택이 무산된 예루살렘 결의안을 그대로 193개국이 참여하는 총회에 부칠 예정이다. 이 결의안은 유엔의 예루살렘에 대한 기존 입장을 준수하고,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결정을 무효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안보리에서는 이집트가 발의했고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이 무산됐다.
헤일리 대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리야드 만수르 유엔주재 팔레스타인대사는 이 결의안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예상하며 총회 표결 결과를 낙관했다. 만수르 대사는 기자들에게 “총회는 거부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국제사회가 미국의 일방적인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승인하고 대사관도 옮기겠다고 발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렀다. 안보리에서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우크라이나조차 예루살렘 선언 무효화에 찬성표를 던지며 미국에 대한 비판 입장을 드러냈다. 헤일리 대사는 “모욕적”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9일로 예정된 중동 방문을 다음달로 연기하는 등 미국도 국제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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