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를 검토할 수 있고 미국 측에도 그리 제안했다고 밝혔다. 매년 2월 말~3월 초부터 두 달 가까이 진행되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3월 18일 패럴림픽 폐막 뒤로 늦출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미연합훈련 중지ㆍ연기는 1991년 노태우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끌어 내기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를 북한에 통보한 이후 처음이다.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방어훈련이지만 작전계획 시뮬레이션뿐 아니라 증원군을 포함해 1만명 이상의 미군과 한국군 5,000명이 실제 상륙 및 기동훈련을 실시한다. 북한이 해마다 이 훈련을 “북침 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한미군사훈련 연기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의 참가를 유도해 과거 어느 때보다 고조된 한반도 전쟁 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고려할 만하다. 유엔의 평창올림픽 기간 ‘휴전’ 결의와 국제사회의 지지에 덧붙여, “북한이 올림픽 기간 도발을 멈춘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명분도 충분하다. 우리 스스로의 ‘평화올림픽 다짐’에도 걸맞다.
미국도 사실상 수용 분위기라니 남은 것은 북한의 태도다. 더 두고 볼 일이긴 하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설득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이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는 문 대통령 말대로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9월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정치와 올림픽은 별개”라며 참가 가능성을 내비쳤고, IOC는 자격이 안 되더라도 북한 선수의 경우 와일드 카드로 참가를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최근 “핵무력 완성” 선포 이후 협상에 관심을 보이는 북한의 태도 변화도 기대를 보탠다. 북한이 이번 한미군사훈련 연기 검토 메시지를 흘려듣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더라도 남북 또는 북미 간 대화 기회가 열릴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과의 대화를 우선해 온 데다 북미 모두 조건 없는 대화에는 소극적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미국은 핵ㆍ미사일 도발 중지 약속을 대화의 전제로 내걸고 있다. 양측이 원하는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고서는 본격적 대화가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대화로 나아가기 위한 접촉의 문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도발 중지, 한미의 연합군사훈련 연기는 함께 그 문고리를 잡아가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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