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대대적인 독립 국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정부와 주변국의 압력에 굴복해 대부분의 쿠르드 민병대 점령지를 내준 쿠르디스탄 자치정부가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 시위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정부건물은 물론 모든 정당 관련 건물까지 공격하면서 자치정부의 통치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드러냈다.
AFP통신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이라크 쿠르디스탄 술라이마니야주에서 치안당국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5명이 숨지고 70명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역 보건당국의 타하 모하마드 대변인은 시위대가 시장 집무건물과 정당 건물을 정파에 관계없이 공격했다고 전했다.
수천여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주로 공무원과 교사들로 정부의 긴축정책과 임금 체불에 항의해 지난 19일부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AFP통신은 시위대가 술라이마니야주의 란야ㆍ키프리, 아르빌주의 코이산자크 등지에서도 나타났다고 전했다. 코이산자크에서는 시장관저가 불에 탔고 키프리에서는 현재 자치정부를 이끄는 쿠르드민주당(KDP) 당사가 공격을 받았다. KDP는 10월 사퇴한 마수드 바르자니 전 자치정부 수반이 속한 정당으로 현재 정부는 그의 조카인 네치르반 바르자니 총리가 이끌고 있다. KDP와 오랜 경쟁 정당이나 현재는 연합 정권을 형성하고 있는 쿠르드애국동맹(PUK) 당사도 공격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서는 바르자니 수반의 포스터가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위대가 환호하는 모습 등이 영상으로 공유됐다.
시위를 촉발한 것은 긴축 반대와 임금 체불이지만 정치적인 구호도 나타났다. AFP에 따르면 시위대 일부는 “당신들은 분쟁지역을 지켜내지 못했고 쿠르드 지역을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외쳤다. 분쟁지역이란 기존에 인정된 자치구역 외 쿠르드 주민 다수 거주구역을 가리킨다. 지난 10월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디스탄 독립 시도를 막기 위해 키르쿠크를 비롯한 주요 분쟁지역에서 쿠르드 병력 페시메르가를 몰아냈다. 당시 쿠르드 정부는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고 확보한 분쟁지역을 아우르는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꾀했으나 이라크 중앙정부의 강경한 태도와 주변국의 압력에 결국 굴복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주민들이 시위에 나설 합법적 권리는 인정하지만 정부기관 건물을 향한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날 저녁 폭력 시위를 조장한 혐의로 10월 1일 운동단체 ‘뉴 제너레이션’을 창립한 언론 경영인 샤스와르 압둘와히드를 체포했다. 또 그가 2011년 설립했으나 최근 운영에서 손을 뗀 독립방송국 NRT도 당국의 침탈을 받아 방송을 중단했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하이다르 압바디 총리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민들이 다친다면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란 입장을 표명했다. 사드 하디시 이라크총리실 대변인은 “쿠르디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자치정부와 정당들의 실정 때문”이라며 “바그다드 정부의 감독이나 투명한 거래 공개 없이 자치정부가 석유를 판 것이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했다. AFP에 의하면 중앙정부는 쿠르디스탄 지방에 배정된 국가예산을 17%에서 12.6%까지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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