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도시계획이 첨단기술을 활용해 대기 질을 개선하고 교통체증을 완화하는 데 그치면 안 됩니다. 소득불평등 해소 등 거시적인 도시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난달 9일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만난 리키 버뎃 교수는 “런던이 스마트시티를 탐구하는 데 최고의 도시는 아니지만 스마트한 도시계획의 좋은 예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학과 건축학 전문가로 미국 하버드대 도시계획학 교수를 역임한 그는 올 초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훈장(CBE)을 받았을 만큼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런던정경대에선 ‘시티스(Cities)’라는 도시 문제 연구소를 이끌며 도시학을 가르치고 있다.
버뎃 교수는 켄 리빙스턴, 보리스 존슨, 사디크 칸으로 이어지는 런던시장 3명의 교통 정책을 스마트한 도시계획의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리빙스턴 전 시장은 런던에서 혼잡도가 가장 높은 센트럴 지역에 진입하는 차량에 대해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5파운드(약 1만7,000원)의 혼잡 통행료를 매겼다. 이어 사디크 칸은 지난 10월 디젤 차량과 노후 차량에 대해 ‘독성요금’이라는 명목으로 10파운드를 추가 부과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런던시는 재정을 늘려 환경에 재투자하는 한편 도심의 차량 통행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2013년 자전거도로 등 인프라 확충에 10억파운드(1조4,5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존슨 전 시장에 이어 칸 시장도 2050년까지 런던을 탄소배출 제로 도시로 만들겠다며 자전거 사용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버뎃 교수는 이 같은 정책이 “단지 교통체증 해결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환경과 건강까지 고려한 정책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스마트한 도시계획은 결국 시민의 행동방식까지 바꾸게 된다”고 말했다.
버뎃 교수는 런던의 스마트한 도시계획 가운데 하나로 런던교통국의 데이터 활용을 꼽기도 했다. 그는 “시민들의 교통수단 활용 정보를 데이터화해 분석하더라도 시가 나서서 이를 바탕으로 전체 교통 시스템을 일률적으로 수정하는 대신 민간의 다양한 실험들과 시민 의견을 반영하는 접근법을 택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는 계층 간 소득불평등과 지역 격차다. 런던의 빈곤율은 30%에 육박하며,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 소득의 평균 5.5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뎃 교수는 “스마트한 도시계획으로 부유한 런던 서부와 가난한 동부의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킹스크로스 재건 사업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과거 산업 중심지였으나 쇠락하면서 버려졌던 이 곳의 재생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 위해 주민 7,500여명(연인원)이 6년간 353차례 회의를 열어 106개 합의사항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킹스크로스는 친환경 주거지역이자 구글 유럽 본사 등이 들어선 상업지대로 바뀌었다. “킹스크로스의 주인인 주민들이 자신들의 비전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주민 스스로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간 것이죠. 스마트 도시계획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런던=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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