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를 기억한다.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빨간 장화. 셀로판지의 바스락거리는 질감도 떠오른다. 리본을 풀고 셀로판지를 치워내고 장화 속에 든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던 순간의 설렘까지도.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동네 구멍가게 좌판에까지 늘어져 있던 빨간 장화 과자세트. 괜히 포장 값이나 더 들지, 안 팔리는 거 모아 파는 거라고, 그런 상술에 놀아나선 안 된다던 부모님의 강경한 태도에,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고, 그래서 더 받아보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딱 한번 그걸 받아본 적이 있다. 때마침 방문한 외삼촌 덕분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고 설이 가까워져 오는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언제 가져다 주는 게 무슨 상관이랴. 빨강장화를 받는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인 걸. 셀로판지에 먼지가 앉았으면 또 어떠랴, 장화 속의 과자들은 그대로인 걸. 막상 별 것 아닌 것들로 채워진 것을 확인하고도, 부모님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짝만 더 생기면 양쪽으로 나눠 신고 다닐 수도 있다고, 우겨보고도 싶었다. 물론 어찌해서 발이 들어간다 해도 걷기는커녕 똑바로 설 수도 없게 만든, 바닥이 둥근 플라스틱 용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한동안 한구석에 모셔두고 양갱 같은 것을 골라 먹기도 했다.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할로윈이니 하는 것들이 없던 시절. 크리스마스 케이크니 칠면조니 외식이니가 뭔지 모르던 시절. 군것질거리들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의 빨강장화.
얼마 전 후배가 슈톨렌(stollen)을 가져다 주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빵이예요, 얇게 잘라 커피랑 드세요, 하곤 총총히 사라졌다. 단단한 빵 위에 뿌려진 하얀 슈거파우더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건포도 오렌지껍질 아몬드 등이 촘촘히 박혀 향기롭고 달콤하고 고소했다. 이 빵이 독일 수도사의 옷 모양을 따라 만들어졌다거나, 처음 주교에게 바쳐졌던 빵이었다거나, 주일마다 한 조각씩 잘라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거나 하는 유래나 풍습은 나중에 알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걸 식탁 한 귀퉁이에 놓아두고, 오며 가며 한 조각씩 얇게 잘라, 후배 말대로 커피와 함께 먹고 있는 중이고, 아직 두어 번 더 먹을 양이 남았다. 퉁퉁했던 빵이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며,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걸 안다기보다, 이 해도 이제 머지 않았구나 실감하곤 했다.
독일에 슈톨렌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뚜론(Turron)이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 슈퍼마켓에는 뚜론 선물세트가 즐비하게 놓인다. 오래된 뚜론 가게에는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뚜론은 빵이라기보다 누가(Nougat)에 가깝다. 땅콩이나 아몬드가 가득 든 누가. 카라멜에 아몬드와 깨를 섞어 만든 것도 있고, 아몬드가루를 꿀에 개어 포슬포슬하게 만든 것도 있다. 색도 질감도 모양도 다양하다. 얇은 벽돌 모양, 둥근 판 모양, 모나카 모양, 아몬드 모양. 뚜론을 진열해 놓은 쇼윈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고소함과 달콤함의 축제가 펼쳐진다.
처음 뚜론을 먹어보았을 때, 나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땅콩강정을 떠올렸다. 엿을 녹여 땅콩이며 콩이며 깨며 해바라기씨 같은 걸 넣고 단단하게 굳힌 것. 어린 입맛에는 느끼한 깨나 비린 콩보다는 땅콩이 많이 든 땅콩강정이 최고였다. 몰랑몰랑한 땅콩범벅을 밀대로 민 다음 칼로 서걱서걱 자르기 시작할 때면, 그 옆에서 냉큼냉큼 집어먹던 자투리 조각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오래된 뚜론 가게 앞에 줄을 섰다가, 마치 누구에게 줄 선물을 사듯, 예쁘게 포장된 뚜론 세트를 샀다. 그러곤 빨강장화 속을 들여다보듯,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 식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곳을 떠나는 날까지 오며 가며 하나씩 골라 먹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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