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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험한 ‘법카’

입력
2017.12.17 14:3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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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신용카드가 있지만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엄카’ ‘아카’다. 엄마, 아빠가 자식에게 준 신용카드다. 엄카족이라는 용어도 있다. 부모 신용카드로 생활을 하면서 월급은 고스란히 모으는 직장인을 말한다.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엄격히 보면 불법 증여에 해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적발하기는 어렵다. 나도 아이가 대학 입시철에 급할 때 쓰라고 신용카드를 줬다가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찾는다면 카드사용 문자 메시지로 자식의 동선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법인을 상대로 발급되는 신용카드는 법인카드다. 법인카드는 경비의 투명성을 높이고 손비 처리로 인정되는 항목이 많아 사용이 늘고 있다. 비품구매나 접대비 차량유지보수 비용 등에 쓰임새가 많다. 그래서 법인카드 결제규모는 매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125조 7,000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72조원을 넘었다. 전체 카드결제에서 법인카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이르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상품권구입과 특급호텔이용 유흥주점 화훼업종 등의 분야에서 사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 법인카드는 남용 사례도 많다. 법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무와 무관하게 가족 동창회 친구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각종 모임에는 ‘법카’를 가진 사람이 환영을 받는다. 또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대표가 법인카드로 가족 살림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카페에는 법인카드 유용에 대한 고발이 많다. 하지만 식당 주인들은 법인카드 결제가 제일 반갑다.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시키고 내역을 상세하게 따져보지 않는다. ‘마법카’라는 별칭도 나왔다.

▦ 하지만 위험천만한 것이 법인카드다. 감사조직이 조사를 할 때 법인카드가 빠질 수 없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기법에 법인카드 추적도 포함된다. 법인카드 사용 장소에 따른 지출 패턴 분석이나 카드깡 적발 등을 통해 뇌물수수 확인절차가 이루어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내보낼 때도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뒤진다. 꼬투리를 잡히면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반항도 어렵다. 적폐청산에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치졸해 보이기는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강규형 이사 해임건의도 법인카드 유용이 근거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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