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 간담회
“금산분리 해결 노력 시작했다…
혁명 아닌 진화로 공정경제 실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이 해결해야 할 핵심 현안으로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문제를 지목했다. 취임 이후 “4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강조해온 김 위원장이 특정 그룹의 개혁 과제를 구체적으로 주문한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14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문제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24조는 대기업집단 금융회사가 비(非)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8.19%(9월말 기준)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삼성생명→삼성전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등으로 연결돼, 이 회장 일가가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장 일가가 삼성생명 고객의 돈을 토대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며 금산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며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은 금융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두 곳 이상 보유한 그룹에 대해 금융당국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제도로, 내년 하반기(7~12월) 도입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의 양해를 구해 금융위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도 말했다.
통합감독시스템이 시행되면 그룹 내 계열사간 출자 지분은 금융사의 ‘적격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삼성전자 주식(8.19%)은 삼성생명의 자기자본에서 제외된다. 시장에선 통합감독시스템 도입 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은 교수 신분이던 지난 1월 발표한 ‘재벌개혁의 전략과 과제’ 보고서에서 “통합감독체계가 도입되면 삼성물산의 삼성생명 출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출자 등 내부 출자가 삼성생명의 자본적정성 평가에서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공제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이것이 바로 삼성그룹 스스로 비정상적인 출자구조를 개선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이 금산분리 문제에서 과거처럼 ‘버티기’로 시간을 끌 수 없는 만큼 자발적인 금산분리 해소 노력을 취하라는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현대차, SK, LG 등의 자발적인 재벌개혁도 재차 촉구했다. 그는 ‘재벌 개혁과 관련, 4대 그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답해하고 있다’는 질문에 “재벌 그룹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은 각 그룹에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자발적 개혁의) 요체는 해결 방법을 실행하는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것”이라며 “변화의 끝이 아닌, 변화의 시작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6개월 이내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발상 때문에 지난 30년간 개혁이 실패했다”며 “혁명이 아닌 진화하는 방식으로 공정 경제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