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동선 뒤따르던 본보 기자
막아선 경호원에 항의하자 폭행
촬영하려던 카메라도 빼앗아
취재 비표도 보여줬지만
허용 안하며 안하무인 구타
전날 비즈니스 포럼 행사선
설명도 없이 막무가내 철수 요구
14일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취재진 폭행 사건 현장에 이성은 없었다. 중국측 경호원들은 기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 취재하고 있다는 비표를 보여줘도 안하무인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폭행을 말리는 청와대 춘추관 간부까지 넘어뜨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중국 국빈 방문 이틀째를 맞아 오전 10시32분(현지시간) 베이징 국가회의중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중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개막 연설을 하고 행사 시작을 알리는 ‘타징’ 이벤트에 참여했다. 탤런트 송혜교 씨와 그룹 ‘엑소’의 멤버 3명 등이 함께한 행사장은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중국 시민 수십여 명이 몰려들어 혼잡했고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문 대통령을 밀착 경호했다.
문 대통령이 10시55분쯤 현장에 설치된 아모레퍼시픽 등 우리 기업들의 부스 2~3곳을 둘러보기 시작하면서 사달이 일어났다. 중국 경호원들이 문 대통령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기자단을 막아 선 것이다. 취재진이 항의하자 경호원들은 본보 멀티미디어부 고영권 기자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뒤로 자빠뜨렸다. 고 기자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으며 이 장면을 다른 기자가 촬영하려 하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카메라까지 빼앗았다. 문 대통령과 경호원 일행은 뒤에서 벌어진 폭행 장면을 보지 못한 채 예정된 동선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다른 부스로 이동하고 취재진이 따라붙는 11시쯤 2차 폭행이 벌어졌다. 중국인 경호원들은 국내 기업부스가 있는 맞은 편 스타트업 홀로 이동하는 문 대통령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을 또다시 막아 섰다. 취재 비표를 보여줬음에도 경호원들은 기자단의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이에 항의하자, 경호원 10여명이 매일경제 사진부 이모 기자를 복도로 끌고 나가 주먹질을 가하며 집단 구타했다. 이들은 부스 입구에서 10여 미터를 끌고간 뒤 바닥에 쓰러진 기자의 얼굴과 등을 발로 밟아가며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동료 기자 및 청와대 직원들이 경호원들을 따라가면서 “스톱(stop)”이라고 연신 외치며 말렸지만 소용 없었다. 10여분 간 이어진 소동 끝에 이 기자는 코피를 쏟았고 눈 주위는 퉁퉁 부어 올랐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우리 경호 어딨어? 우리 경호?”라고 외쳤지만, 문 대통령을 근접 경호하던 우리측 경호원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중국 경호원들은 폭행을 말리던 청와대 직원도 목 뒷덜미를 잡고 내팽겨쳤다. 폭행 사건으로 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행사장 안에서 7분 가량 머물 예정이던 문 대통령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10분여를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일단 진상파악을 해보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한다. 집단 폭행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두 기자는 대통령 의료진에 의해 응급처치를 받은 뒤 베이징 시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허리통증, 안구 출혈과 코 부위의 심한 타박상을 입었으며,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청와대 경호처와 외교부는 중국 측의 폭행에 공식 항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측은 ‘행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동선을 모두 취재한다’는 내용의 사전 확약을 중국 공안 측에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는 당혹스런 입장이다.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취재 제한이 상당히 많은데, (취재 범위에 대한) 사전 조율을 했지만…”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취재진에 따르면 중국측 경호원들의 과도한 행동은 전날부터 불거졌다. 문 대통령의 한중 비즈니스 포럼 행사를 취재 중이던 우리 기자단을 향해 중국 공안 소속 관계자들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철수를 요구하며,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가려버리는 등 무례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한국 기자단이 이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양측은 몸싸움까지 벌였다.
베이징=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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