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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규범에 대한 규범

입력
2017.12.14 13:5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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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한 줄로 서서 타기 시작했던 기억이다. 급하지 않은 사람은 한쪽에 서고, 바쁜 사람은 빈 다른 쪽을 계단처럼 걸어서 오르내리고.

다들 거기에 잘 적응한 것 같았는데, 2000년대 들어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한 줄 서기는 잘못이라며 ‘두 줄 서기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에스컬레이터에서 ‘왜 길 막고 서 있느냐, 바쁘니 지나가자’는 사람과 그런 이에게 매너 없다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한동안 봤다.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는 끝내 정착하지 못했다. 지금은 한 줄 서기가 권장되는 건지, 아니면 여전히 두 줄 서기가 원칙이지만 홍보만 하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눈치껏 판단해서 행동한다.

시민들이 두 줄 서기에 저항한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해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본다. 나는 캠페인 주체 측이 말하는 ‘당위’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거 정말 지하철 이용자들을 위한 운동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다니면 위험하고, 한쪽에 몰려 서 있으면 기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그런 논리라면 계단은 안 위험한가. 계단에서도 모든 사람이 손잡이를 잡고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의 수명을 그 정도로 신경 써야 하나? 매일 수백만 명이 한 줄 서기로 각자 시간을 절약하는 게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이익이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두 줄 서기로 생기는 편익은 시민보다는 에스컬레이터 운영주체에 더 많이 가는 듯했다. ‘자신들이 져야 할 안전관리 책임과 유지보수 비용을 시민에게 떠넘기는 것 아닌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캠페인 전체에 냉소적 태도가 되었다. 특히 이 캠페인이 ‘뭔가를 하면 안 된다’는 새 규범을 제시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더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논란 이후 새로 등장하는 유무형의 규칙에 일단 의심의 눈길을 던지고 보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비행기 좌석 등받이를 뒤로 한껏 젖히면 매너 없는 행동이라고? 그거 혹시 항공사에서 퍼뜨리는 얘기 아닐까. 자기들이 홍보와 비용절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의자 간격과 등받이 각도를 그렇게 설정해놓고 그 모순을 승객들의 ‘매너’로 해결하려는…… 농담이다.

그런데 너무 허술해서 농담처럼 들리는 캠페인도 있었다. 장애인, 탈북자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각각 장애우, 새터민이라고 바꿔 부르자는 운동은,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다가 성과 없이 끝났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그 대체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새터민은 심지어 정부에서 만들어 보급한 용어였는데.

며칠 전에는 아파트 층간 소음에 주의하자는 공익광고를 라디오에서 들었다. 광고 속 대사가 이랬다. “오디션이 코앞인데 왜 기타는 안 치세요?” “내일 면접인 아랫집 청년이 자고 있으니까요.” 그런 배려를 ‘층간 내리사랑’이라는 신조어로 부르며, 다들 조심하자고 설득하는 내용이었다.

광고 만든 이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앞으로 지을 집은 방음공사를 철저히 하도록 규제를 강화하면 되는데, 이미 지어놓은 집은 어쩌겠는가. 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참는 것 외에 뾰족한 답이 있겠나.

그래도 헛웃음이 난다. 건설사가 집을 허술하게 지어서 발생한 문제를 왜 입주민한테 떠넘기나. 이제 집에서 까치발로 걷지 않으면 ‘내리사랑’ 모르는 냉혈한이 되는 건가. 내가 아래층 청년이라면 내일 면접을 본다는 사실을 윗집에서 차라리 모르길 바랄 것 같은데. 그리고 요즘 아파트에서 자기 윗집이나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다들 알고는 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떤 행위가 사회적으로 승인되는지 여부에 극히 민감하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도 그것이고, 인터넷 게시판에 ‘이거 저만 이상한가요?’라고 글을 올리는 이유도 그거다.

사회는 변하고, 사람들이 승인하는 일도 함께 변한다. 새로운 규범을 적시에 잘 만들면 적은 비용으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의식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거리가 그렇게 깨끗해졌고, 갈 길은 멀지만 가부장 문화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그러나 규범은 동시에 강력한 통제도구가 되기도 한다. 때론 법보다 만들기도 쉽다. 상임위니 본회의니 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는 지금 급변하고 있고, 새 규범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중이다. ‘규범을 만드는 일에 대한 규범’도 필요할 것 같다. 하나, 막연한 기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둘, 특정 소수를 희생시키지 않고 이익을 참여자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게, 셋, 필요성을 충분히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한 뒤에, 넷, 즐거운 분위기에서 자발적인 형태로 시행하되, 다섯, 동참이 늦은 사람을 조롱하거나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다 등등.

그나저나 지하철에서 백팩을 앞으로 매는 것은 이제 규범이 된 건가? 누가 ‘민폐, 공해, 백팩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상냥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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