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 없다. 대신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에 대해 말할 것이다. 인생의 목록을 만든 다음, 가장 중요한 항목만 남기고 모두 지워 버리는 방법을 안내할 것이다. (…) 신경을 덜 쓰는 기술을 전할 것이다. 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마크 맨슨의 책 ‘신경 끄기의 기술’(갤리온)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10월 27일 국내 출간된 뒤 각종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한 달간 10만부 넘게 팔렸다. 맹목적 긍정은 오히려 독이라며 ‘내려놓고 포기하고 더 적게 신경 써야’ 성공한다고 주장하는 맨슨은 1984년생으로 미국의 파워 블로거 출신이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불구, 유명 저자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데는 제목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신경 끄라’는 메시지 덕이 크다. 2015년 한 해 동안 돌풍을 일으켰던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ㆍ2014)에서 시작된 ‘이완’의 메시지가 인문서를 넘어 자기계발서 등 다른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교보문고 마케팅지원실 김현정씨는 “최근 인기 있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사회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삶의 패턴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들이 많다”며 “‘미움 받을 용기’ 이후 주로 일본 에세이 쪽에서 이런 책들이 많이 소개됐는데 이제는 자기계발서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책읽는고양이)가 해당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올 한 해 국내에는 비슷한 색깔의 일본 에세이가 쏟아지다시피 했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엘리), 사노 요코의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을유)와 ‘이것 좋아 저것 싫어’(마음산책), 소노 아야코의 ‘타인은 나를 모른다’(책읽는고양이)와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이봄) 등, 이 책들이 말하는 바는 하나같이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주류사회로부터 자의 혹은 타의로 떨어져 나온 이들은 냉담한 현실에서 쫓기듯이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자고 독자들을 다독인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국내 저자들의 에세이도 결이 같다.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놀), ‘도대체’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예담),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시공사)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헬조선’ 청년들이다. 남들이 결혼과 취업으로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보며 이들은 스스로를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자조하지만 진짜로 좌절하지는 않는다. 거창한 것보다 소소한 것, 비장한 것보다 귀여운 것을 선호하며 웃음과 ‘덕질’로 패배주의를 비껴 가는 것이 특징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잘 살아 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의미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곤 잘 살지는 않는 것이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중 ‘인생이란’)
이 책들의 주요 독자인 30대는 ‘신경 끄기의 기술’의 주요 독자 연령대와도 일치한다. 예스24와 교보문고 집계 결과 ‘신경 끄기의 기술’의 구매자 중 30대가 각각 37%, 35.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갤리온 김선영 편집자는 “과거엔 긍정의 힘을 믿으면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책이 잘 팔렸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이제 그건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회불균등 사회에서 노력의 힘을 믿지 않게 된 청년들이 자존감을 지탱하는 새로운 삶의 기술로 ‘힘 빼’라는 메시지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긍정과 희망의 시장’인 자기계발서까지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출판계의 전반적 변화를 시사한다. 김 편집자는 “멀리 있는 불빛을 보며 고통을 견디는 것보다 좀 더 현실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자기계발서의 내용도 이전과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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