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는 삶 원하지 않아”
“한 편의 영화 주인공 같던 난 이젠 없어”. 엄정화(48)는 신곡 ‘엔딩 크레딧’에서 전성기를 지난 은막의 스타를 노래한다. “너와 나의 영화는 끝났고 관객은 하나둘 퇴장”했다며 “너와 나의 크레딧만 남아 위로 저 위로”라는 엄정화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쓸쓸하다.
1992년 영화 ‘결혼 이야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싱글즈’(2003) 등으로 배우로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뒤 서서히 내리막길을 준비해야 하는 그의 현실과 닮아 여운이 짙다. 배우 문소리가 주연과 연출을 맡아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보여준 것처럼, 집에 쌓아둔 트로피는 수두룩하지만 이젠 좀처럼 신작 제의가 들어오지 않는 중년 배우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차디찬 현실에 엄정화는 무릎 꿇지 않는다. 그는 신곡 뮤직비디오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극장의 스크린을 배경으로 두 팔을 흔들며 춤을 춘다. 파란색 벨벳 소재의 바디 슈트를 입고 무대를 휘젓는 모습이 미국 팝스타 비욘세 같다. 지천명을 앞둔 ‘댄싱퀸’의 무대는 여전히 파격이다. 엄정화는 “나이에 맞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며 “늘 신나고 새로우며 열정적이고 싶다”고 했다.
성대 부상 딛고 완결한 10집 “더 노래 부르고 싶어”
엄정화가 13일 새 앨범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 파트2를 공개했다. 지난해 낸 파트1에 이은 신작으로, 2008년 9집 ‘디스코’ 발매 후 8년 만에 선보인 10집의 완결판이기도 하다.
‘드리머’와 ‘와치 미 무브’ 등이 실린 파트1이 판타지였다면, 파트2는 정반대다. 엄정화는 또 다른 신곡 ‘딜루전’에서 “나는 너의 가장 어두운 기억 아니 실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읊조린다.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스타로서의 숙명이 엿보인다. 화려한 삶을 살면서도 불안을 품고 살아야 하는 이중적인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엄정화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이효리와 노래를 주고받아 어두운 전자음악은 더 서늘하게 들린다. ‘제주댁’ 이효리 덕에 요가에 빠졌다는 엄정화는 “무대에서 과감하고 멋진 이효리와 대화하듯 노래하고 싶었다”고 합작한 계기를 전했다.
파트2엔 ‘소 왓’과 ‘포토그래퍼’ 등 네 신곡이 실렸다. 1980~90년대 유행했던 신스팝부터 요즘 유행하는 전자음악을 두루 아울렀다. “8집(2004)부터 두드러졌던 음악적 실험은 이어오면서 파트1보단 대중적”(김상화 음악평론가)인 게 특징이다. 엄정화는 이달 말 발라드 곡인 ‘쉬’를 추가로 공개한다.
엄정화는 10집을 낸 뒤 앨범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린다. 그는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다 성대 일부가 마비되는 시련을 겪었다. 8개월 동안 일상 대화도 불가능했다. 엄정화는 “목을 다쳐 다신 앨범을 낼 수 없을 거라고 좌절하던 때가 떠오른다”며 “오히려 이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더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엄정화는 1989년 MBC 합창단에 합격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방송인 이주일(1940~2002)이 운영했던 극장식 바 ‘홀리데이 인 서울’서 코러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정화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오는 25일 ‘2017 SBS 가요대전’에서 그룹 원더걸스 출신 선미와 세대를 뛰어넘은 합동 무대를 선보인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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