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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일전 이기고 월드컵 실패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범근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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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일전 이기고 월드컵 실패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범근의 일갈

입력
2017.12.13 15: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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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차 감독은 최근 축구인 최초로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에 헌액됐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차 감독은 최근 축구인 최초로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에 헌액됐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소년의 아버지는 늘 라디오로 아들의 축구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다. 텔레비전이 귀한 시절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던 유제두(69)의 권투 경기를 보려면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면사무소까지 가야 했다. 소년은 1973년 1월 한국일보가 제정한 ‘한국체육 신인상’을 받아 상금 10만원으로 발이 네 개 달린 럭키금성 텔레비전을 아버지께 사 드렸다. 그 다음부터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있는 날, 온 동네 사람들이 소년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소년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선수로 성장했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 무대를 호령하며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됐다.

차범근(64).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 달 29일 대한체육회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고(故) 손기정(마라톤), 고 김성집(역도), 고 서윤복(마라톤), 고 민관식(체육행정), 장창선(레슬링), 고 김운용(체육행정), 양정모(레슬링), 박신자(농구), 김연아(피겨)에 이어 열 번째다. 하지만 축구인으로는 처음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 받았던 한국체육 신인상과 함께 가장 자랑스러운 상으로 기억하고 싶다. 한국체육 신인상이 내 축구 인생에 디딤돌이었다면 이번 상은 마침돌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차 감독은 수상 직후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초청을 받아 지난 2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식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한국은 스웨덴(1차전), 멕시코(2차전), 독일(3차전)과 F조에 속했다. 독일은 차 감독과 인연이 깊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그는 ‘차붐 신화’를 썼다. 국내 축구인 중 차 감독만큼 독일 축구에 정통한 축구인은 없다.

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차 감독을 만나 스포츠영웅 헌액과 러시아 월드컵 조 편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사다난했던 2017년 한국 축구를 돌아봤다.

차 감독이 스포츠영웅 헌액패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차 감독이 스포츠영웅 헌액패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한국 축구뿐 아니라 한국 체육의 영웅으로 인정을 받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선수 은퇴 후 남은 인생은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하면서 살겠다고 늘 다짐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뭐랄까 조금 수동적이었다.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 축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어 “적극적이라는 게 감투를 쓰거나 직책을 맡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라고 부연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 임원 등으로 축구 행정 전면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전망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인생을 살며 내 의지대로 적극적으로 덤벼든 건 ‘축구 선수로 성공하고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딱 하나뿐이었다. 대표팀 감독(1998 프랑스 월드컵), 프로팀 감독(울산과 수원), 축구 해설위원(MBC, SBS), 행정가(2017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모두 내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고, 합당하다고 느꼈기에 수락한 거다. 꼭 어떤 타이틀을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밖에서 지적도 더 많이 하고 축구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도 계속할 거다. 내 삶 자체가 한국 축구의 거름이 돼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1973년 1월 제10회 한국체육 신인상을 받은 차범근. 그는 이 상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디딤돌이 됐다고 회고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3년 1월 제10회 한국체육 신인상을 받은 차범근. 그는 이 상이 자신의 축구 인생에 디딤돌이 됐다고 회고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상 소감에서 특별히 1973년 받은 한국체육 신인상을 언급했는데.

“내 인생에 첫 상이다. 선수로 성장하는데 굉장히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상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그때 깨달았다. 상을 받으니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더 붙고 의욕이 생기더라. ‘차범근 축구상’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메달을 걸어주는 것 또한 많은 아이들이 나처럼 상을 통해 꿈을 더 키웠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차 감독 서재에 보관돼 있는 ‘골드스타’ 라디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차 감독의 아버지는 이 라디오로 아들의 경기 중계를 듣곤 했다. 서재훈 기자
차 감독 서재에 보관돼 있는 ‘골드스타’ 라디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차 감독의 아버지는 이 라디오로 아들의 경기 중계를 듣곤 했다. 서재훈 기자

차 감독은 45년 전 받은 백상체육대상 상금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상금 10만 원으로 발 네 개 달린 럭키금성 텔레비전을 샀다. 텔레비전이 귀했을 때라 그 전에는 아버지가 늘 라디오로 내 경기 중계를 듣고는 하셨다”고 미소 지었다. 손때 묻은 라디오는 그의 자택 서재에 지금도 보관돼 있다.

-시상식장에서 부인(오은미)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한 이유는.

“나에게 오는 ‘화살’을 평생 대신 맞아준 사람이다. 난 축구 밖에 모른다. 그런데 세상은 축구만 한다고 알아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모든 궂은일을 감내한 사람이 아내다. 지금의 ‘차붐’도 아내 덕에 있는 거다. 독일 처음 갈 때는 성공이고 뭐고 아무 것도 보장된 게 없는 신세였다. 그런데 아내가 ‘여보, 내가 피아노 레슨을 해서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게 할 테니 아무 걱정 마. 그게(유럽진출) 소원이라면 가야지. 젊었을 때 도전해’라고 하더라.”

-그 고마움을 앞으로 어떻게 갚을 건가.

“나는 주인공으로만 살았다. 이제 내가 주인공인 시대는 끝났다. 난 조연이고 엑스트라다. 집에서도 손자와 손녀를 등ㆍ하교시키고 가족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시장 가서 장도 봐 오는 게 내 일이다.(웃음) 자연의 섭리가 그렇다. 내가 선수, 감독으로 있을 때는 모든 가족들이 나를 위해 희생했으니 이제는 내가 가족을 위해 살아야지.”

1977년 1월 결혼식을 올린 차범근 감독과 오은미 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7년 1월 결혼식을 올린 차범근 감독과 오은미 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범근 감독이 11월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아내 오은미 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
차범근 감독이 11월 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아내 오은미 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

러시아 월드컵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한국이 F조에 포함되는 순간 현장에 나란히 앉아있던 차 감독과 박지성(36)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 동시에 허탈해하는 표정이 TV중계화면에 잡혀 화제를 모았다.

-독일과 같은 조가 됐는데.

“어려운 조다. 다른 조로 갔으면 하는 바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 ‘어렵다, 쉽다’ ‘16강을 간다, 못 간다‘를 떠나 우리가 충분하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 다음에 결과에 승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열정도 못 보이고 그러면 팬들이 정말 아프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역부족이라면 팬들도 인정할 거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팀 독일은 현 세계랭킹 1위로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다. 독일을 이끄는 요하임 뢰브(57) 감독은 차 감독과 독일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함께 뛴 인연이 있다. 차 감독은 방송 해설을 할 때 독일 경기를 중계하던 중 벤치에 앉아 있던 뢰브 감독에 대해 묻자 “현역 시절 제 백업이었던 선수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이 부분은 이번 기회에 꼭 바로잡고 넘어가자”고 했다.

차범근 전 감독의 현역시절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범근 전 감독의 현역시절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 감독 서재에 있는 각종 상패와 메달. 그는 2013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에 선정됐고, 최근 분데스리가가 뽑은 ‘9인의 레전드’에도 뽑혔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차 감독 서재에 있는 각종 상패와 메달. 그는 2013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에 선정됐고, 최근 분데스리가가 뽑은 ‘9인의 레전드’에도 뽑혔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그 때 나는 팀(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공격수였고 요기(독일 사람들이 부르는 뢰브 감독 별명)는 스무 살짜리 유망주로 막 팀에 들어왔다. 당연히 나는 모든 게임을 주전으로 뛰었고, 요기는 벤치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요기는 팀이 키우려는 차세대 공격수였다. 나이 어린 유망주가 분데스리가 프로 1군 멤버에 이름을 올린 것만도 대단한 거다. 이런 전후 사정을 뚝 자르고 그저 ‘차붐의 백업 멤버였다’고만 하면 요기에게 큰 결례다.”

-뢰브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부상이 잦아서 선수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지도자고 결국 꽃을 피웠다. 위르겐 클린스만(53ㆍ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당시 뢰브가 수석코치)도 전술적인 부분은 모두 뢰브에게 일임했다. 요기는 세계적인 감독이 된 지금도 신사답고 겸손하다. 예전에 같은 팀에 뛰었을 때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도 여전히 깍듯하다. 하하(웃음)”

-독일과 경기가 조별리그 최종전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전망이 많다.

“독일이라는 팀 특성을 알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독일이 우리와 경기에 앞서 2승을 하면 주전을 쉬게 하고 백업멤버 위주로 나올 거다. 그런데 그게 더 어려울 수 있다. 독일은 유망주들로 구성된 백업멤버 기량도 너무 좋다. 그 선수들이 올해 21세 이하 유럽선수권, 컨페더레이션스컵 모두 우승한 것 아닌가. 그들은 한국전에 출전하면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 거다. 독일 1.5군이 나와서 우리에게 수월할 거란 기대는 아예 안 하는 게 좋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멕시코와 만난다. 멕시코와는 역대 월드컵에서 딱 한 번 격돌한 적이 있다. 차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1998 프랑스 월드컵 첫 경기였다. 한국은 본선 사상 처음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하석주(49ㆍ아주대 감독)가 퇴장 당해 수적 열세에 몰렸고 1-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2차전에서 네덜란드 0-5로 참패했고, 차 감독은 프랑스 현지에서 경질됐다. 월드컵 부진으로 팬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대한축구협회가 사상 초유의 대회 도중 사령탑 경질이라는 충격 요법을 쓴 것이다. 2011년 12월에는 조광래(63ㆍ현 대구 사장) 대표팀 감독이 기술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축구협회 수뇌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해임됐다. 차 감독은 당시 칼럼을 통해 자신이 프랑스에서 물러났을 때를 회고하며 이런 일이 또 반복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둘 다 한국 축구에서 부끄럽고 가슴 아픈 장면들이다.

-멕시코와도 인연이 깊은데.

“멕시코는 후추 같은 근성이 있다. 헝그리 정신이랄까 속된 말로 ‘깡’이 있다.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멤버 가운데 상당수가 대표 선수가 돼 있다.”

-멕시코를 보면 1998년 생각이 다시 날것 같다.

“그런 일이 다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유지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요즘 말로 하면 ‘축구계의 적폐’다. 조광래 감독이 또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한국 축구가 반성해야 하고 그런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시간이 약이다. 차 감독은 “시간이 지나고 아들 (차)두리(37ㆍ현 국가대표 코치)가 대표 선수가 되고 나도 축구해설을 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차범근-차두리’처럼 월드컵과 인연 있는 ‘축구 부자(父子)’도 드물다. 아버지는 선수(1986), 감독(1998)으로 월드컵을 나갔고, 아들도 선수(2002ㆍ2010)에 이어 코치로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이 자신보다 지도자로 훨씬 더 잘할 거라고 이야기 했는데.

“두리는 선수 때 나처럼 1인자가 아니었다. 벤치 멤버들의 심리, 성향을 잘 안다. 또 유럽과 K리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 상대를 잘 공감해주기 때문이다. 늘 공부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하며 선진 축구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잘 할 거라고 믿는다. 스타가 아닌 사람들이 지도자로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2015년 3월 31일 차두리(왼쪽)가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감독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5년 3월 31일 차두리(왼쪽)가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감독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만간 한일전 축구가 벌어진다. 신태용(48)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6일 일본 도쿄에서 일본과 동아시안컵 최종전을 치른다. 사실상의 결승이다. 월드컵 직전 벌어지는 한일전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차 감독이다. 그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최종예선 일본 원정에서 역전승(2-1. 일명 도쿄대첩)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며 본선 티켓을 땄다.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1998년 3ㆍ1절에 다이너스티컵(동아시안컵의 전신) 개막전에서 일본에 1-2로 졌다. 월드컵 본선에 초점을 맞춰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하던 시기라 선수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3ㆍ1절 패배에 ‘국치일’이라는 말이 나왔고 일부 언론은 차 감독 경질론까지 언급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차 감독은 월드컵을 두 달 여 앞둔 1998년 4월 1일 잠실에서 열린 ‘2002월드컵 공동개최 기념 한일전’에서 2-1로 이겨 성난 여론을 잠재웠다.

1997년 9월 도쿄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2-1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뒤 귀국하는 차범근 감독과 선수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9월 도쿄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2-1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둔 뒤 귀국하는 차범근 감독과 선수단.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전이 또 열린다.

“시대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일본에 졌다고 벌떼처럼 달려들진 않으니까.”

-그래도 한일전의 부담은 여전할 것 같은데.

“내가 대표팀 감독할 때 프랑스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상대 전력 분석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일본에 패했다고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일부 언론은 내가 물러나야 한다고 불을 지폈다. 그래서 월드컵 두 달 앞두고 기어이 일본을 이겨 설욕했다. 그래서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 게 뭐가 있나. ‘한일전 승리’ 이거 딱 하나 남았다. 정작 중요한 본선에 가서 우리는 실패했다. 이게 과거가 주는 교훈 아닌가. 내가 산 증인이다. 한일전 승리? 동아시안컵?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월드컵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신태용호에 대한 팬들의 불신이 여전하다.

“감독자리에 오른 지 반년도 안 됐다. 최종예선 두 경기 빼고 평가전 4경기, 동아시안컵 2경기 치렀다. 대표팀 수비? 문제 있다. 전술적인 실수도 몇 가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앞으로 전혀 개선될 수 없는 부분들 인가. 아니지 않나. 물론 비판은 필요하다. 지적할 건 날카롭게 지적하되, 대표팀 그리고 신 감독에게 시간을 주자. 선수단이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고 안착할 때까지 조금 더 지켜보자.”

얼마 전 한국 축구를 들끓게 했던 거스 히딩크(71) 감독 영입설 이야기에도 차 감독은 할 말이 많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히딩크 감독의 2002 한일월드컵 업적(4강)은 우리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후 최근 그의 행보(2010년 이후 러시아ㆍ터키ㆍ네덜란드 대표팀 등 맡아 기대 이하)도 살펴야 하는데 그건 외면한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만에 하나 히딩크 감독이 와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원래 책임을 안 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거다.”

-히딩크 사태는 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에 대한 반감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축구협회가 잘못했다.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을 거다.(홍명보 전무, 박지성 유스전략본부장 등 개혁 인사) 축구협회가 위기를 면피하기 위해 시늉을 내기만 한 게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새로운 얼굴들은 낡은 제도를 바꾸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야 팬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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