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하고 효율성을 살린 ‘아빠 차’를 강조하던 캠리가 갑자기 ‘와일드’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다. 이전보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란다. 기초가 되는 플랫폼부터 안팎의 생김새, 주행 성능까지 모든 부분에서 확 바꿨다고. 토요타 측 표현에 따르자면 ‘전례 없는 변화’다.
신형 캠리에서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외모다. 토요타의 ‘킨 룩’이 좀 더 과감해졌다. 이전 디자인이 무난해 조금 지루했다면 지금은 튀는 개성으로 외모가 눈에 띈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차체 길이는 30mm, 휠베이스는 50mm가 늘었고 특히 구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뒤 오버행이 줄어 스포티한 느낌이 강해졌다. 저중심 설계를 강조한 새로운 플랫폼,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TNGT)를 도입해 전 세대보다 넓고 낮다. 여기에 18인치 휠은 고성능 차에서 자주 보이는 멀티스포크로 채워졌다. 실용성을 강조한 무난한 디자인이 아니라 스포티함을 강조하겠다는 의지가 외모에서부터 티가 난다.
실내에서는 독특한 비대칭 형태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조작 편의를 높이기 위해 운전석 측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는데, 이 자체를 주변을 감싼 디자인으로까지 드러낸 경우는 이례적이다. ‘타이거아이’라 센터터널 기어노브 주변에 이름 붙여진 장식은 나무인 듯 금속인 듯 오묘한 질감이다. 진짜 나무도 금속도 아닌 페이크지만 무늬만 넣은 게 아니라 독특한 질감도 더했다. 저중심 설계 덕에 시트 포지션도 앞뒤 각각 22mm, 30mm 낮아졌다. 이에 맞춰 보닛을 40mm 낮춰 전방 시야를 개선했다.
신형 캠리는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엔진, 두 가지 파워트레인 모델이 있지만, 하이브리드 모델만 시승했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제원을 살펴보면, 캠리 하이브리드의 합산 출력은 211마력으로 이전보다 8마력 늘었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직병렬식으로 엔진과 전기모터를 단순히 더한 것이 합산 최고출력이 아니다. 캠리 하이브리드에 사용된 엔진은 최고 178마력, 전기모터는 최고 120마력을 발휘한다. 이전 모델보다 엔진은 20마력 증가, 전기모터는 23마력 감소했다. 8세대 캠리에 들어간 엔진은 동력성능을 개선한 직렬 4기통 2,487cc 다이내믹 포스 엔진으로 기존에도 우수하던 40%의 열효율을 41%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무단변속기(CVT)를 맞물린다.
모터의 도움을 받은 경쾌한 출발을 예상하며 액셀러레이터를 살짝 밟았지만, 예상과 달리 캠리 하이브리드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에코 모드에 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액셀러레이터를 살살 밟으면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반응한다. 그렇다고 액셀러레이터를 깊숙이 밟는다고 해서 급격히 치고 나가는 반응도 없었다. 급가속이 안 되도록 차가 스스로 조절했다.
분명 힘은 넘치는데, 가속은 시원스럽지 않았다. CVT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꾸준하게 속도는 계속 올라가고, 고속에서도 추가 가속이 가능할 정도로 힘은 여유 있지만, 원하는 순간에 치고 나가지를 못했다. 되도록 엔진 회전수는 1,500rpm 전후를 유지하며 달렸다.
기어 노브를 왼쪽으로 당겨 S, 수동 모드로 두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CVT인데도 기어 단수를 표시해 운전자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기어 표시는 가상일 뿐이겠지만, 원하는 만큼 회전수를 사용할 수 있다. 엔진 회전수를 높게 유지하면서 달리면 쭉쭉 올라가는 속도 덕에 입가에 미소가 씩 지어진다. 변속 충격이 없어 기분은 덜 하지만, 회전수가 높아지면서 같이 높아지는 엔진 소리와 진동이 정숙한 와중에도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운전자를 부추긴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속도가 올라가도 여전히 안정적이다. 훌륭한 직진성은 물론이고, 차체의 흔들림 자체가 적다. 출렁이는 서스펜션이 아니라 이걸 단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도로의 자잘한 요철을 잡아내는 능력을 볼 때는 그저 단단하기만 한 게 아니다. 부드럽게 잡아주고 충격을 걸러주는데, 이건 탄력 있고 안정적으로 세팅했기 때문이다. 댐퍼가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차를 찰지게 바닥으로 눌러준다. 저중심 설계도 한몫하겠지만, 이건 분명 적절한 스프링과 댐퍼 세팅 덕이다. 서스펜션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는 더블 위시본이 적용됐다.
안정적인 저중심 설계와 서스펜션 세팅으로 고속에서도 불안하지 않고, 노면을 타거나 요철에 영향받지 않아 차의 중심을 잡기 위해 하는 스티어링휠 조작이 적어진다. 차가 알아서 걸러 주고 잡아주니 운전자는 스티어링휠만 반듯하게 잘 잡고 있으면 된다.
반면, 토요타가 말한 ‘와일드’함은 느끼지 못했다. 와일드라면 거칠고 사납고 컨트롤이 어려운 느낌이 아니던가. 제멋대로인, 길들여지지 않는, 그런. 8세대 캠리 하이브리드는 시종일관 안정적이고 부드럽게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속도계의 바늘이 가르치는 숫자를 보고 의심했을 정도다. 체감 속도는 계기판에서 가르치는 숫자의 70%에 불과했다. 잘 다듬어지고 제대로 길든 민첩하고 빠르면서도 흔들림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만약, 차가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이라, 운전자를 ‘와일드’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사용됐다면, 적절하다고 인정한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