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부침이 있게 마련이다. 경제 형편도 마찬가지다. 저축을 할 때도 있고 저축을 조금 헐어야 하는 때도 있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저축을 헐어야 하는 이유가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흥청망청 생활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가족은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같이 벌어서 같이 쓴다. 워낙 충분히 벌기 때문에 매년 곳간을 가득 채웠다. 매년 새로운 곳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쌓이는 재물이 줄기 시작했다. 한 가족의 식구가 워낙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가족은 버는 것은 없으면서 쓰기만 했다. 그래도 쌓아놓은 게 많아 감당할 만한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 가족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다른 가족의 수가 줄어들었다. 마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그 가족은 점점 건강해지고 수명이 길어졌으며 씀씀이는 말도 못하게 커졌다.
다행히 1960년대까지만 해도 당장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가족이 얼마를 써대든 마을 전체가 버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1970년이 되자 드디어 그 가족이 쓰는 게 마을이 버는 것을 초과했다. 문제의 그 가족은 점점 더 빨리 늘어났고 그들은 수의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씀씀이를 늘렸다. 마을의 위기였다. 그 가족만 그걸 모른 체했다.
1987년에는 1년치 번 것을 12월 19일에 벌써 다 썼다. 2000년에는 그 날이 11월 1일로 앞당겨졌다. 1년 번 것을 열 달 만에 다 쓴 것이다. 이걸 특정 가족이 다 썼다. 그들의 수와 기세에 눌린 다른 가족들은 수를 줄이고 숨죽이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 가족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젊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러다가 우리의 미래도 문제가 되겠는데요. 우리도 좀 아껴 써야겠어요.”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족의 실권을 갖고 있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5년이 되자 1년치 수입이 8월 13일에 거덜났다. 이쯤 되니 권력자들도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마을은 물론이고 자기 가족의 운명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들은 2015년 12월 파리에 모였다. 세계기후정상회의가 바로 그것. 독자들은 일찌감치 알아차렸겠지만 여기서 마을은 지구이고 과소비하는 그 특정한 가족은 인류다.
지구는 물, 공기, 흙 등 생명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인간들은 그것을 사용한다. 1960년대만 해도 인류가 소비한 양은 지구가 생산한 양의 4분의 3에 불과했다. 그런데 1970년부터 사용량이 생산량을 초과했다. 1년치 생산량을 다 소비한 날을 우리는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 날이 지난 다음부터는 바다와 숲이 흡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자라는 것보다 더 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태어난 것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며, 지구가 만들어낸 것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사용하는 생태자원의 크기는 다르다. 가장 많은 생태자원을 사용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미국인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다. 세계인들이 호주 사람처럼 생태자원을 사용한다면 지구는 한 개로 부족하다. 지구는 5.4개가 있어야 한다. 국토 면적 당 생태자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땅은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땅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토에서처럼 생태자원을 사용하려면 지구가 8.4개 필요하다. 지금 세계인이 사용하는 생태자원을 감당하려면 지구가 1.7개 필요하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이면 지구가 두 개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2015년 이맘때쯤 파리에서 열린 세계기후정상회의에 전 세계 195개국 정치 지도자들이 모였겠는가? 당시 정상들은 모여서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의 상승을 2도에서 막자고 합의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많은 나라들은 탄소배출을 규제해야 하고 그것은 일자리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6월 1일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덕분에 지지도가 올랐다.)
그렇다면 올해의 지구 생태용량 초과일은 언제일까? 지난 8월 2일이었다. 2년 만에 열하루나 앞당겨진 것이다. 더 진전된 회의가 필요하다. 지금 파리에서는 ‘원 플래닛 서밋(One Planet Summit)’이 열리고 있다. 인류가 살 수 있는 단 하나뿐인 행성 지구의 기후를 지키기 위한 정상회의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국 지방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태양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 등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데 지방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을 통해 설명했다. 중앙정부가 합의하고 각 지방정부가 실천하는 관계 속에서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 더 앞당겨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세대의 문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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