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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수능 이후

입력
2017.12.10 13: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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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공부 아이러니는 ‘공부 염증’ 조장

세상엔 입시 아닌 ‘색다른 공부’ 많아.

캠퍼스에서 머리 환한 삶 찾아 헤매길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은 12월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가 달갑지 않다. “색색으로 깜빡이는 이 전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넌 지금 행복하냐? 네가 있을 자리는 있냐? 고 누군가 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이 나라의 수능시험 역시 국어나 수학 문제만 묻지 않는다. 연말거리의 반짝거리는 전구들처럼 따지듯이 묻는다, 넌 고교시절 이것저것 꾹 잘 참았냐? 이 사회에 네가 있을 자리는 있냐? 너는 일 년 동안 뭘 한 거니?

이 무례한 질문에 너무 오래 시달려야 할 만큼 대학입시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학 간판 말고는 딱히 자존감을 얻을 거리가 없는 인생을 살아갈 사람에게는 수능 성적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결정적 지표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를 향해 활보해 나갈 사람들에게 대학입시는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 에피소드를 위해 온통 수단화된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분위기 속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청소년은 불행하다.

나 역시 대입 입시가 끝난 뒤에는 그 무익한 시간의 독(毒)을 씻기 위해 강원도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선배 한명, 그리고 대학졸업 후 술집 주인이 된 친구 한명과 함께. 군인들의 노역 흔적이 남아 있는 인제 원통 지역 산비탈을 넘어 길가 움푹 파인 곳에서 침낭을 펴고 노숙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추위 속에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다른 생을 꿈꾸었었다.

그 후 이 나이가 되도록 대학을 떠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입시의 문제점은 단지 가혹한 경쟁이나 청춘의 덧없는 소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입시공부가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부를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곳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 하는 역설이 대학입시공부에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싫어진 공부가 곧 공부의 전부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진학이라는 목표에 고교시절을 갈아 넣은 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취업을 대비하라는 사회의 명령을 듣는다. 그리하여 취업이라는 목표에 대학시절마저 갈아 넣고 나면, 시험을 위한 수단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공부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나머지 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은 공부라면 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한 때 양식(洋食)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그랬다. 미국 유학 시절, 양질의 식사를 할 형편이 못되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양식을 생존이라는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계속 먹었다. 맛이 없었다. 20대 후반까지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토종” 한국인답게, 나는 양식을 싫어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살기 위해 먹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아진 경제사정 덕에,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생존여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좋은 양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맛있었다. 내장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양식을 좋아하는구나. “토종” 한국인도 양식을 좋아할 수 있구나.

우리가 고급 양식만 먹으며 일생을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정신을 환하게 하는 사치스러운(?) 지식만을 추구하며 평생을 소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활인으로 살기 위하여, 입시, 취직, 고시공부를 해야만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써 시험공부를 해서 기왕에 대학에 들어 왔다면, 반드시 지식을 통해 머리에 전구가 들어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루에 갇혀 있다가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그러한 사치스러운 지적 경험을 찾아 캠퍼스를 헤매야 한다. 그리고 입시를 위해 보내야 했던 그 지루했던 시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그 환한 앎에서 얻어야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있음을 영원히 모른 채로 죽지 않기 위해서.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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